서울을 출발해 파도 한 점 없이 잔잔한 에메랄드 빛 바다에 뛰어드는 데 필요한 시간은? 4시간이면 충분하다. 수영복과 간단한 여름 옷가지 정도만을 챙겨 매일 저녁 인천공항을 출발하는 직항노선에 오른 뒤 기내 영화 한편을 여유롭게 감상하고 나면 어느새 열대의 파라다이스, 레포츠의 천국 사이판이 당신의 눈앞에 펼쳐진다.
사이판의 연평균 기온은 27도로 다소 높지만 연중 기온차가 1~2도에 불과한 세계에서 연중 가장 고른 기후를 가진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게다가 섬 주위를 천연산호초 제방이 둘러싸고 있어 파도가 없다. 수상스포츠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가히 천국이라 불릴 만 하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사이판을 찾은 가족에게 가장 어울리는 수상 스포츠는 스노클링이다. 물안경과 스노클, 오리발 등 간단한 장비와 구명조끼만 빌리면 초보자도 쉽게 배울 수 있다. 소시지를 준비해 물 속에서 손가락으로 얇게 부수어 뿌리면 예쁜 열대어들이 당신 앞으로 몰려올 것이다.
다양한 수상스포츠를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다면 사이판 최대의 워터파크가 있는 PIC사이판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PIC사이판에서는 상시 대기하고 있는 클럽 메이트들이 스쿠버다이빙, 윈드서핑, 수중 에어로빅, 파도타기는 물론 인공암벽타기, 인라인스케이트, 양궁 등 다양한 레포츠를 지도해주며 즉석에서 장비대여도 가능하다.
사이판은 또 골퍼들의 천국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태평양 바다를 모든 그린에서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킹피셔 골프 코스를 비롯, 라오라오 베이 골프 리조트, 코럴 오션 포인트 등 6곳의 골프장이 한국 골퍼들을 유혹한다. 비싼 그린 피가 흠이었으나 최근 북마리아나 관광청과 골프장들 사이에 요금 조율이 이루어져 곧 100달러 이하로 가격이 떨어질 예정이라 하니 기대할만 하다
천혜의 아름다움을 품은 사이판은 또한 비극의 상처를 갖고 있는 섬이기도 하다. 역사교과서 왜곡과 독도 문제로 반일감정이 극에 달한 요즈음, 사이판은 온몸으로 일본의 침략전쟁과 그 전쟁이 조선인들에게 남긴 상처를 말해주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필리핀해를 바라보며 섬을 종단하는 비치로드를 따라 북쪽으로 달리다 보면 태평양전쟁 당시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의 피와 땀이 어린 사탕수수밭이 이제는 아무도 돌보지 않아 황폐해진 가운데 끝도 없이 이어진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은 이제는 관광지로 꾸며진 ‘일본군 최후 사령부’. 속절없이 바다를 향하고 있는 녹슨 대포와 기관총들을 지나 절벽 위로 난 계단을 올라가면 사령부로 쓰였다는 벙커가 나온다. 벙커 구석에는 일본 관광객들이 향 대신 담배를 피워올린 깡통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한국 관광객들이 자주 재떨이로 착각하는 까닭에 ‘디스’나 ‘레종’ 같은 국산 담배 꽁초도 간간이 보인다.
간단히 일본군의 잔재를 둘러본 뒤에는 일본군들이 패주 직전 조선인 군속들을 떨어뜨려 살해해 ‘타살절벽’이라고 불리우는 벙커 뒷편 산을 바라보며 잠시 묵념을 올리는 것이 좋겠다.
다시 차를 북쪽으로 달리면 도로가 끝날 즈음 나타나는 ‘만세절벽’. 전쟁 말기 미군의 상륙으로 패색이 짙어진 일본군이 항전 끝에 손에 손을 잡고 바다로 뛰어든 곳이다. 절벽 아래로 넘실대는 옥빛 파도는 관광객들에게는 환상적인 기념사진 촬영장소가 된다.
조금 더 호젓한 곳을 찾고 싶다면 일정을 하루쯤 쪼개어 사이판에서 고속 페리를 타고 1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티니안을 찾아보자.
고대 타가왕조의 전용해변이었다는 타가비치에서 연인 또는 가족과 함께 하늘을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이는 낙조를 감상하는 것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단 남양의 태양은 생각보다 떨어지는 시간이 짧으므로 시간을 정확히 맞춰야 한다.
또 타가비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티니안의 새로운 명소 다이너스티 호텔의 카지노를 들러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무료로 제공되는 음료를 들고 카지노 곳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게임들을 관전하거나 적은 돈을 들여 직접 게임에 참가해보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사이판=전성철기자 foryou@hk.co.kr
■ 여행수첩
●사이판에서는 절대 수돗물을 그냥 마시지 말 것. 화산으로 생긴 섬인 까닭에 천연담수가 귀하고 상수도의 수질도 그다지 좋지 않다. 다소 돈이 아깝더라도 편의점 등에서 생수를 구입해 가지고 다녀야 한다. ●가이드 없이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싶다면 렌터카나 스쿠터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렌터카는 21세 이상이면 국제면허증 없이도 빌릴 수 있으며, 스쿠터와 헬멧도 섬 곳곳에서 렌탈이 가능하다. 단 미국 자치령인 까닭에 미국 교통 법규가 통용되며, 대부분 도로의 주행속도가 시속 35마일(약 56km)로 제한돼 있으니 유념해야 한다. ●호텔이나 접객 업소, 택시를 이용할 때 팁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도 골칫거리. 보통 객실에서 나올 때는 1달러 정도를 베개 밑에 놓고 짐을 들어줄 경우에도 짐 1개당 1달러, 레스토랑이나 택시에서는 요금의 10~15%를 팁으로 지불하는 것이 보통이다. 팁은 지폐로 지불하여야 하는데, 동전으로 팁을 주는 경우에는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고픈 애주가들은 낮에 미리 술을 구입해 두어야 한다. 관광지지만 법적으로 밤 10시 이후에는 슈퍼마켓 등에서 주류를 팔지 않으며, 술집들도 새벽 2시까지만 영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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