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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빈집’의 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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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빈집’의 양면

입력
2005.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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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빈집’은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온다. 남자 주인공은 말을 한마디도 안 한다. 여자 주인공은 서너 마디 정도, 그것도 "사랑해요" 등의 외마디가 고작이다. 김기덕 감독의 재치와 페이소스가 극소량의 대사에 묻어 있다. 이 영화는 빈집만 골라 잠깐씩 머물며 살아가는 청년이, 가학적 남편에게 갇혀 살다시피 하는 여성과 만나 벌이는 유랑을 낭만적으로 그린다. 공감과 연민, 웃음 속에 보고 나면 좋은 영화에 대한 갈증과 허기가 말끔히 가셔진다. 정서적 충만으로 세상이 한결 둥그렇게 느껴진다.

■ 대사가 별로 없으니 이해하는 데도 어려움이 없다. 최소의 대사가 처음부터 국제영화제와 외국관객을 겨냥한 것일 수도 있다. ‘빈집’은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의 감독상 등 4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오는 21일 개막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됐다. 또 최근에는 네덜란드의 8개 주요 도시에서 동시에 개봉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김 감독이 아름다운 호도(湖島)의 외딴 절과 승려를 다룬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도 지난해 네덜란드 극장가에서 큰 호응을 받았다.

■ 김 감독은 국제영화제를 통해 해외에서 한창 뜨고 있는 우리의 대표적 영화인이다. ‘봄 여름 가을…’은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사마리아’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네덜란드의 한 신문은 미국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함께 ‘빈집’에 별 4개를 부여했다. 특이한 소재의 영화라 흥행 전망이 밝다고도 보도했다. 또 다른 신문도 ‘숨을 멈추게 할 정도로 수준 있는 작품이며, 완벽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 칭찬했다.

■ 하지만 한국에서 김 감독의 영화에 대한 대접은 차가움에 가깝다. 국제영화제의 화려한 조명은 귀국과 함께 빛이 꺼진다. 극장흥행이 부진하고, 비디오 가게에서도 반응이 신통치 않다. 서양이 그의 작품을 지나치게 신비화한 것인가? 임권택 감독과 비교해도 그에 대한 무관심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언론과 영화평론가가 둔감한 까닭인가? 아니면 대중의 저예산·작가주의 영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일까? 지금도 한류(韓流) 바람은 뜨겁고 한국 영화 점유율이 50%를 넘는다. 그러나 이런 영화적 편애와 부조화가 한국 영화의 앞날을 낙관할 수 없게 만든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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