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편집국에서] 진로와 하이닉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집국에서] 진로와 하이닉스

입력
2005.04.08 00:00
0 0

바야흐로 외국계 자본의 전성시대다. 은행이나 고층빌딩을 헐값에 샀다가 되팔아 천문학적인 차익을 남긴 외국계 자본이 물 만난 고기처럼 한국 시장을 휘젓고 다니고 있다. 차익을 챙기는 것도 모자라 아예 한국 기업을 ‘가지고 노는’ 일 마저 생기고 있다.

소주업체 진로의 매각과정은 외국계 자본의 ‘치고 빠지기’의 전형이다. 진로의 최대 채권자인 골드만삭스는 우선매각협상자 선정을 앞둔 지난 달 한 외국 언론에 적정 인수가를 흘렸다. 진로의 가치가 3조6,000억원이 넘는다는 자체 평가결과를 공개한 것이다. 채권자가 인수가를 밝히고 나선 것도 이상했지만 평가 가격은 더 기가 막혔다. 시장에서 생각하는 가격보다 1조원 이상이 많았기 때문이다. 진로에 군침을 삼키고 있는 컨소시엄이 10여 곳이 넘는다는 것을 염두에 둔 몸값 올리기 전략이었다.

인수전에 뛰어든 기업들은 그 의도를 뻔히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낙찰가를 올려 쓸 수밖에 없었다. 하이트맥주는 3조1,600억원을 써 내 매각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결국 골드만삭스는 가만히 앉아 1조원을 챙긴 셈이다.

진로의 매각우선협상자가 선정된 직후 골드만삭스 리서치센터는 뜻밖의 리포트를 내놓았다. 하이트맥주의 낙찰가가 너무 높다는 의견이었다. 자신들이 적정가라고 한 가격을 스스로 부정하는 해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당장 모럴 해저드 논란이 일자 골드만삭스측은 채권담당 부서와 리서치센터와 견해차가 있었다고 얼버무리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배 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이 있다. 외국계 자본이 북치고 장구치며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는 심정은 착잡함을 넘어 참담하다. 환란 이후 지난 해까지 7년간 외국인이 가져간 돈이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보다 더 많다는 집계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상황과 자본시장 개방이 맞물리면서 외국인들은 짭짤한 시세차익을 올려왔다.

배가 아파서 하는 얘기만은 아니다. 외국자본에 문을 걸어 잠그자는 말도 아니다. 어차피 개방화시대에 외국자본과 토종자본을 따지고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정작 탓해야 할 것은 외국자본의 놀이터가 될 정도로 만만했던 한국의 자본시장과 은행의 자산평가시스템 부재다. 골드만삭스처럼 진로의 잠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 못하고 헐값에 진로를 내다 판 은행과 자산관리공사(KAMCO)가 국부 유출의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 인수·합병(M&A) 대상 기업의 적정 가치를 산정할 전문가가 없다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진로 매각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것은 반도체 기업 하이닉스의 부활이다. 4년 전만 해도 부채 11조6,000억원의 부실 기업이었던 하이닉스는 순이익 1조6,924억원을 내는 알짜 기업으로 변신했다. 당초 예정을 1년6개월이나 앞당겨 올 상반기 중 워크아웃에서 졸업할 예정이다.

환란 이후 부실기업의 해외 매각이라는 ‘유행병’이 돌았고 하이닉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2년 5월 미국의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에 한 푼도 못 받고 넘어갈 뻔 했던 하이닉스는 매각협상이 결렬되는 바람에 겨우 살아 남았다. 꾸준한 인력 구조조정과 비 핵심분야의 매각으로 회생의 불을 지핀 하이닉스의 사례는 기업의 해외매각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교훈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창민 산업부장 cm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