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는 매년 1,000명 이상이 루게릭병으로 사망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병을 인간배아복제 기술을 이용해 치료해 보자고 황우석 교수께 제안했습니다. 공동연구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인간배아복제 연구가 불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1997년 복제양(羊) ‘돌리’를 탄생시킨 영국 로슬린 연구소 이안 윌머트(60) 박사는 6일 오후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와 간담회를 갖고 공동연구를 정식 제안했다.
세계 최초로 체세포 핵 이식을 통한 복제동물을 만들어낸 윌머트 박사의 이번 방문은 지난해 6월 그가 직접 황 교수에게 연구협력을 요청해 성사됐다. 지난해 초 세계에서 처음 인간배아복제 줄기세포를 만들어낸 황우석 교수와 윌머트 박사의 만남은 ‘세계 생명공학계 두 거장의 조우’로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공동연구 제안에 대해 황 교수는 아직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윌머트 박사 측에서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이해관계를 우선 따져봐야 하며 정부측에서 고려할 사항도 적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두 연구팀은 5월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한-스코틀랜드 보건산업 심포지엄’에서 세부사항을 논의한 뒤 올 상반기 중 협력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윌머트 박사는 지난해 10월 루게릭병 치료를 위해 영국 인간수정태생국(HFEA)에 인간배아복제 허가 신청서를 제출했으며 올해 1월 허가를 받았다. 그는 "루게릭병 환자의 20% 정도가 SOD1이라는 유전자의 돌연변이와 연관돼 있다"며 "인간배아복제를 통해 이 병의 치료법을 연구하는 이유는 배아의 발생 단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돌연변이 세포의 초기 상태를 이해하는데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루게릭병은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걸린 신경계 난치성 질환으로, 근육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신경세포가 손상돼 근육약화 경련 마비 등이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다.
윌머트 박사는 황 교수와의 간담회에 앞서 이날 서울대 문화관에서 강연회를 가졌다. 황 교수와 함께 입장한 그는 강당을 가득 채운 500여명의 학생들에게 "감사합니다"라는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 뒤 "여러분도 언젠가 영국에 있는 우리 연구실을 찾아주길 바란다"고 말해 환호성을 받았다. 한 학생이 2003년 6살의 나이로 사망한 돌리의 사망 원인을 묻자, "많은 사람들이 복제에 따른 조로(早老) 현상으로 일찍 죽었다고 말하지만, 그 같은 증거는 없으며 실내에서 사육하는 양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급성 감염성 폐 질환이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돌리 복제에 성공한 후 끊임없이 대두돼 온 윤리적 논란과 관련, "많은 이들에게 배아복제가 매우 불편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고 전제한 후 "그러나 배아의 크기는 모래 한 알의 3분의 1 정도로 아무런 의식도 느낌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인간으로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생명 윤리는 ‘새로운 기술이 실험 및 적용 대상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히는가’라는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윌머트 박사는 5일 황 교수 연구실에서 인간배아복제와 관련한 일종의 ‘실험’을 함께 했으며 한국 연구진의 섬세한 ‘손 놀림’에 감탄을 금치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손재주가 없어 직접 배아복제 실험을 해보지는 못했다"면서 "공휴일인데도 이른 아침부터 30여명의 연구원이 나와 일하는 것을 보고 한국 생명공학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고 감탄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사진 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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