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피었다. 곧 살구꽃이 피고 복숭아꽃이 필 것이다. 과수원에 무리지어 피어있는 복숭아꽃을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저절로 ‘도색’이니 ‘도화살’이니 하는 말들을 이해하게 된다.
같은 분홍색이어도 진달래꽃은 좀 처연한 데가 있다. 꽃 빛도 화사하지 않아 색정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복숭아꽃은 한참 바라보노라면, 그리고 그때 마침 바람이 불어와 후두둑 꽃잎이라도 날리면, 그 따뜻한 바람이 저쪽 산모롱이에서 불어오는 것인지 아니면 내 마음 속에서 불어오는 것인지조차 혼망하게 잊고 만다. 우리 마음 안의 색정이 정말 복숭아꽃 빛깔을 그대로 닮았다.
복숭아꽃 사이로 저쪽 보리밭에서 아지랑이가 아롱아롱 피어 오르면 더 이상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 밭 가 복숭아나무 가지에 호미를 걸어두고 저 편 들에서 나물을 캐는 동네 처녀를 향해 휘파람을 길게 휙, 휙 불어대다 자기가 밭에 호미를 가져 왔는지 안 가져 왔는지조차 잊고 만다.
여름에 복숭아를 다 따고 나면, 그 복숭아밭에 호미 하나가 꼭 걸려 있다. 여름 내내 비를 맞아 호미 날은 벌겋게 녹이 슬고, 호미자루는 거무스름하게 썩어 있다. 그게 바로 도화살을 입은 호미인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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