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 도화살을 입은 호미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 도화살을 입은 호미

입력
2005.04.07 00:00
0 0

벚꽃이 피었다. 곧 살구꽃이 피고 복숭아꽃이 필 것이다. 과수원에 무리지어 피어있는 복숭아꽃을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저절로 ‘도색’이니 ‘도화살’이니 하는 말들을 이해하게 된다.

같은 분홍색이어도 진달래꽃은 좀 처연한 데가 있다. 꽃 빛도 화사하지 않아 색정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복숭아꽃은 한참 바라보노라면, 그리고 그때 마침 바람이 불어와 후두둑 꽃잎이라도 날리면, 그 따뜻한 바람이 저쪽 산모롱이에서 불어오는 것인지 아니면 내 마음 속에서 불어오는 것인지조차 혼망하게 잊고 만다. 우리 마음 안의 색정이 정말 복숭아꽃 빛깔을 그대로 닮았다.

복숭아꽃 사이로 저쪽 보리밭에서 아지랑이가 아롱아롱 피어 오르면 더 이상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 밭 가 복숭아나무 가지에 호미를 걸어두고 저 편 들에서 나물을 캐는 동네 처녀를 향해 휘파람을 길게 휙, 휙 불어대다 자기가 밭에 호미를 가져 왔는지 안 가져 왔는지조차 잊고 만다.

여름에 복숭아를 다 따고 나면, 그 복숭아밭에 호미 하나가 꼭 걸려 있다. 여름 내내 비를 맞아 호미 날은 벌겋게 녹이 슬고, 호미자루는 거무스름하게 썩어 있다. 그게 바로 도화살을 입은 호미인 것이다.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