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남 마산의 진동(鎭東) 유적지에서 기원전 6세기 한반도 남부의 청동기 사회가 위계화한 계층사회나 ‘초기 국가’형태였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고고학적 증거가 다수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마산시 진동면 진동리 116일대 토지구획정리지구에서 발굴작업을 해오고 있는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센터장 이범홍)는 최근 이 지역에서 다수의 지석묘와 석관묘, 청동기시대 밭 유적, 길이 61c에 이르는 고려시대 도로 유적 등을 확인했다. 유적지에는 지름 10~30c 안팎인 대형 묘역(墓域)을 갖춘 30여기의 지석묘들이 서로 인접된 상태로 자리잡고 있고,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양대 무덤 양식인 지석묘와 석관묘의 묘역이 확연히 구별돼 있다. 특히 약 400c에 이르는 자연 제방 위에 집중적으로 조성된 지석묘군(群)과 제방 안쪽에서 집중 확인된 석관묘는 지금까지 철기시대에서 기원을 찾았던 초기 국가의 탄생에 대한 논의를 청동기시대까지 소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 가능성은 묘역의 외관과 구조, 규모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조사단은 설명했다. 조사단은 이들 지석묘군을 군집도와 입지 조건에 따라 모두 6개 군으로, 원형·타원형·장방형 등 묘역 형태를 기준으로 해서는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중 A군 1호묘는 묘역이 직경 20c가 넘는 대형으로 묘역 주위를 지름 4 c가량의 주구(周溝)라고 하는 일종의 도랑을 설치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묘는 토석을 이용해 성토한 위에 조성됐으며, 호석을 두르는 등 체계적인 공정으로 축조됐다.
역사문화센터 최헌섭 책임조사원은 "이처럼 체계적 공정을 거쳐 축조한 대형 묘역에 한 사람만을 매장한 것은 일인독존(一人獨尊)의 관념이 반영된 것으로 권력의 출현을 가리키는 것"이라면서 "묘역을 갖춘 지석묘와 석관묘의 차별적인 입지, 관개시설을 갖춘 대단위의 논과 밭, 해양과 내륙을 잇는 사통팔달의 교통 입지 등을 고려할 때 초기 국가 탄생의 요인들이 확인된다"고 말했다. 지석묘가 띠를 이루며 분포하고 있는 범위가 길이 400c 너비 100~150c로 국내 최대규모여서 많은 노동력이 토목공사에 조직적으로 동원된 것으로 보인다.
자연제방을 따라 형성된 지석묘군과는 달리 석관묘는 2~5기씩 군집을 이루며 자연제방 기슭에서 분리되어 조성돼 있다. 지석묘와 석관묘의 규모가 현격한 차이가 나는데다 공간적으로 분리된 현상은 당시 사회가 상당히 위계화한 계층사회였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남경욱기자 kk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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