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회사 AE인 이모(33)씨는 병원 문을 나서며 머리를 긁적인다. 최근 이유없이 생긴 무릎통증의 원인이 바로 ‘뱃살’에 있었다는 진단을 받은 것. 철야작업이 일상인 그는 밤 11시만 되면 어김없이 ‘배꼽시계’가 울린다. 그는 회사 근방 야식업체에서 최고 단돌고객이 된 지 오래. 함께 일하는 카피라이터들이 벨트가 보이지 않는다고 조롱 섞인 농담을 해도 들은 체도 않던 그는 오늘에서야 심각성을 깨달았다.
◆ 직장인 복부비만 위험수준 = 이렇듯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에게 뱃살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얼마 전 한 인터넷 전문 프로그래머 사이트에서 남녀 프로그래머 6,69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업병 및 생활 변화를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중 38%가 ‘복부비만 때문에 고민’이라고 응답했다.
이는 직업특성상 운동량이 절대 부족한 것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게다가 철야 근무시 야식을 먹는 식습관도 넘치는 뱃살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이 조사결과는 비단 프로그래머에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일반 사무직 종사자들도 근무환경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 더구나 잦은 회식과 접대는 불어나는 체중에 가속페달을 밟는 격이다.
특히 일 중독자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운동을 게을리할 뿐만 아니라 술, 담배, 스트레스에 찌들어 사는 데다 감정기복이 심해 육체·정신적 상태가 몸에 악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즉 모든 성인병의 주범인 비만과 함께 고혈압, 소화기장애, 우울증 등 몸이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또 이런 생활을 지속하게 되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지고, 심장박동이 증가하는 등 고지혈증이나 심혈관계 질환에 걸릴 위험이 크다.
그리고 늦은 밤에 과식을 하거나 아침식사를 거르는 것도 큰 문제다. 아침에 적당한 영양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오전시간에 정신·육체적 활력이 저하돼 여러모로 손해다. 또 과식을 하면 소화기능 장애, 비만, 지방간, 당뇨병을 유발할 수 있고, 우리 몸의 면역력을 크게 떨어뜨린다.
◆ 한국인에게 많은 상복부 비만 = 또한 같은 비만이라도 복부에 집중적으로 살이 붙는 복부비만은 건강에 더 해롭다. 복부비만은 내장 주위에 지방이 몰려있어 중년층 돌연사의 으뜸 원인인 심혈관 질환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체중이 많이 나가는 단순비만보다 상복부 비만이 월등히 많은 편이어서 문제가 심각하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은 여성의 경우 허리둘레 80㎝ 이상, 남자는 90㎝ 이상이 되면 비만과 연관된 성인병 위험도가 급격하게 높아진다고 한다. 즉 상복부 비만은 같은 몸무게가 비슷한 다른 유형의 비만에 비해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심장 질환, 뇌졸중 등 성인병 발생률이 더욱 높다.
이는 피부 밑에 지방이 끼는 피하지방보다 내장에 지방이 많은 내장지방형 비만이 더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말과도 일치한다. 내장 주위의 지방세포는 피하지방에 비해 쉽게 쌓일 뿐 아니라 분해돼 혈액을 통해 이동하면서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지방산은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 등 여러 대사성 성인병을 유발하는 주 요인이다. 특히 간에 낀 지방은 인슐린흡수를 억제, 간의 인슐린 기능을 떨어뜨리고 혈당량을 높여 당뇨병을 유발할 수 있다.
또 높아진 혈당량은 췌장의 인슐린 분비를 자극해 혈중 인슐린을 높인다. 이 혈중인슐린은 중성지방을 합성해 고혈압과 동맥경화를 촉진한다.
◆ 엄청난 비만의 사회적 비용 = 최근 비만의 사회적 비용을 추산한 결과, 1조17여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국민 의료비의 5%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다. 이제 비만이 서구에서처럼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직장인의 주 근무시간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 운동이나 식이요법 등 체중감량을 위해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유지하기가 힘든 환경에 처해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건강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하면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운동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또 철저한 식사량 조절을 통해 엄격하게 체중관리를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모두 건강을 위한 투자인 셈.
만약 체중감량을 위한 의지가 있는 데도 실천하기가 어렵거나 효율적인 방법을 찾고자 고심하는 사람이라면 비만전문 클리닉이나 운동처방사 등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도움말= 이승남 강남베스트클리닉 원장>도움말=>
■ 뱃살 유형별 공략법
복부비만은 배가 나온 모양에 따라 치료법도 달라진다.
복부비만은 크게 4유형으로 나뉜다. 폭식과 과음을 일삼는 남성에게 많은 윗배 볼록형, 변비가 심한 여성에게 많은 아랫배 볼록형, 출산 후 여성에게 많은 옆구리 비어짐형, 소아비만이나 고도비만이 발전된 남산형이 그것. 이 중 남성들에게 많은 윗배 볼록형과 남산형을 퇴치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윗배 볼록형은 팔 다리는 가는 반면 배만 나왔다고 해서 ‘거미형 비만’이라 불린다. 이들의 복부를 컴퓨터단층촬영(CT) 해보면 피하에는 지방이 많지 않지만 장간막 사이에 지방이 두껍게 분포돼 있다.
성인병과 돌연사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단순히 체중만 줄일 것이 아니라 다른 합병증이 있는지 여부를 파악해 함께 치료해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이다. 우선 열량섭취를 대폭 줄이고, 야채와 해조류 위주의 저지방 식이요법을 해야 한다. 고기는 삼겹살보다는 수육 등과 같은 기름을 뺀 삶은 살코기가 적합하다. 짜거나 매운 음식도 금물. 술과 담배는 절대 피해야 한다.
여기에다가 운동에 재미를 붙여야 한다. 흔히 뱃살을 빼겠다고 윗몸 일으키기와 같은 복근운동을 하는데 이보다는 유산소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관절에 무리가 없는 사람이라면 가볍게 달리기나 빨리 걷기를, 관절에 무리가 있는 사람은 수영이나 자전거 페달 밟기가 좋다. 운동은 하루에 30분 이상씩 1주일에 5회 이상, 3개월이 넘도록 꾸준히 해야 한다.
남산형은 위아랫배가 연결돼 완만한 언덕을 이룬 복부비만 형태로 치료가 더욱 힘들다. 합병증도 더욱 많을 뿐더러 오랫동안 비만을 유발하는 습관을 지녀왔기 때문에 생활습관을 고치는 것이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식이요법은 윗배 볼록형과 마찬가지. 다만 고도 비만에 합병증이 동반된 경우에 한해 전문가의 처방과 진찰에 따라 하루 700~800㎉만 섭취하는 초저열량 다이어트를 하는 경우도 있다. 남산형 복부비만은 몇 달 안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길게는 평생, 짧게는 1~2년 이상 꾸준히 치료해야 한다.
따라서 운동을 시작할 때 평생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운동을 고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등산이나 테니스, 탁구, 댄스 등은 다른 사람과 함께 대화하며 어울리기에 적합하다.
자신의 복부비만 유형별로 적합한 식이요법과 행동치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개선되지 않을 때에는 비만치료제 도움을 구할 수 있다. 치료제 복용으로 살이 빠지면서 체중감량에 대한 자신감을 얻고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치료일 뿐 치료제에 전적으로 의지하면 안 된다.
권대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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