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의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는 판화가 이철수(51)씨. 논과 밭에 이런저런 곡식을 심고 가꾸며 농사일 틈틈이 조각칼을 쥐고 목판을 새겨온 지 19년 째다. 1980년대 내내 민중판화가로 이름을 떨치다 90년대 들어 소박한 일상과 자연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돌아섰다.
그의 판화는 담담하면서 깊다. 매우 간결하고 단순하지만, 선(禪)적인 시정과 삶의 긍정이 담겨있다. 느낌이 편안하고 예뻐서 달력이나 엽서 그림으로도 인기다. 6~18일 서울 인사아트센터(02-736-1020)에서 5년 만의 개인전을 한다. ‘작은 것들’이라는 전시 제목 그대로 작지만 소중한 일상의 의미를 전하는 작품 70여 점을 선보인다. 그 중 40여 점은 7~30일 미국 시애틀의 데이비슨 갤러리에서도 전시된다.
화면 한 구석에 시적인 아포리즘의 글귀를 새겨넣곤 하던 그는 이번 전시작들에도 얌전하게 글을 앉혔다. "꿈 없는 잠처럼 잡념 없는 노동. 그 안에서 언제나 좋은 날" "세상을 가만가만 사랑해야지. 이 작은 것들" "움직이는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하는 법-고요히 앉으라!"
그가 평소 자주하는 "책 읽듯 농사 짓는다"는 말에서는 일상의 마음가짐과 근 20년 농부살이의 경험이 엿보인다. 그림도 시 같다. 여백이 큼직해서 무덤덤해 보이는 것부터 하늘 가득 새떼가 날거나 꽃잎이 분분이 날리는 것, 별이 총총한 밤 하늘을 이고 있는 민들레 한 포기, 일하거나 산책하는 사람 등 어떤 작품이든 마음을 착 가라앉힌다. 전시작 중 ‘그림 보는 법’에는 이런 글귀를 새겨놓았다. ‘화가 잊고 그림을 만나세요. 그림이 하는 이야기 재미있거든 그 이야기 챙기세요. 그 이야기 듣고, 조용한 데로 나가셔도 좋지요. -재미없는 이야기셨다구요? -일찍 나오시지 그러셨어요?’
그를 좀 더 가까이 만나고 싶다면 인터넷에 지은 ‘이철수의 집’(www.mokpan.com)을 방문하는 것도 좋다. 이 사이버 공간에서 그는 두 해째 거의 매일 엽서를 띄우고 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