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3월 어느날 경기 이천 양정여자중학교. 뮤지컬 배우를 꿈꾸며 합창단 활동을 하던 갈래 머리 여중생 (전수경·39) 앞에 미모의 음악선생님 (안혜경·48)이 나타났다.
소녀는 평소 마음에 두었던 미남 선생님을 두고 ‘연적’(戀敵)이 되지 않을까 쩔쩔 매었고, 여선생님은 서구적 외모에 활달한 성격의 제자를 눈여겨보았다. 여중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극영화과에 진학, 뮤지컬 배우의 꿈을 이루었다. 결혼과 함께 학교를 떠난 선생님은 이후 환경과 평화를 노래하는 여성운동 가수로 변신했다.
그리고 첫 만남이 있은 지 24년. 잠시 사제의 인연을 맺었던 두 사람은 5월3일 코엑스아트홀에서 막을 올리는 뮤지컬 ‘메노포즈’ 무대에 함께 선다.
조니 린더스 원작의 ‘메노포즈’는 2001년 3월 미국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이후 100만 관객을 모은 히트작. 백화점 속옷 세일 장소에서 만난 네 여성이 브래지어를 사이에 두고 싸우다가 폐경에 얽힌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우정을 나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씨는 돈과 권력을 좇다가 가족들과 사이가 멀어진 전문직 여성역을 맡았으며, 안씨는 60년대를 동경하는 히피 스타일의 중년 여성을 연기한다. ‘헤이 걸’ ‘달의 뒤쪽’으로 주목 받은 연출가 권은아씨가 국내 무대를 꾸미며 ‘맘마미아’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었던 박해미 이경미씨가 한물간 연극배우와 주부로 출연한다.
학교를 떠난 이후 20여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이지만, 서로를 대하는 것이 살갑기만 하다. "유명 배우라서 늘 눈에 띄니 항상 같이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는 안씨. 전씨는 "안정적인 교직을 버리고 음악 활동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참 용감하시다고 생각했습니다. 극중 역할과 성격도 딱 들어맞아요"라며 안씨의 팔짱을 낀다.
서울여성영화제 등을 주관하는 여성문화예술기획 상임대표와 라틴 밴드 ‘라 아마손’의 리더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안씨나, ‘브로드웨이 42번가’와 ‘아가씨와 건달’에 겹치기 출연을 하며 쌍둥이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전씨가 이번 공연에 참여하기는 쉽지 않았다. 제목부터가 ‘폐경기’를 의미하기 때문에 출연에 더욱 부담을 느꼈을 법도 한데 두 사람은 손사래를 친다.
안씨는 "폐경이라는 주제가 오히려 건강하다 싶어 욕심을 부렸다"며 "폐경에 대해 보통 쉬쉬하고 각자의 방에서 끙끙거리는데, 여성의 통과의례를 떳떳이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전씨는 "여자들 이야기니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여자들의 마음속 짐을 덜어줄 수 있는 작품이라 출연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사제지간에서 뮤지컬 동료가 된 두 사람이 바라보는 이번 작품의 특징은 무엇일까. "제목은 다소 무겁고 어둡지만 내용은 발랄하고 유쾌해요. 그러면서도 가슴 찡한 작품이죠. 남자들이 보면 여자를 이해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공연은 7월31일까지. (02)6000-6790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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