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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버린 식목일/ 피해지역 전쟁터 방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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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버린 식목일/ 피해지역 전쟁터 방불

입력
2005.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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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도립공원은 4일 밤에 시작된 불길이 5일 오전에도 잡히지 않아 날이 밝았는 데도 밤으로 착각할 정도로 연기로 가득 찼다. 이 지역에 가득 들어선 모텔과 콘도에 투숙해 있던 봄철 관광객들은 5일 오전 불길이 거세지면서 모두 대피했다. 낙산사 인근에 사는 김홍규(73·강현면 주청리)씨는 "태어나서 이렇게 큰 불은 처음 봤다"며 "새벽에 바로 10m 앞에서 불난 걸 보고 놀랐다"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김씨는 "아침에 대피하라고 해서 대피했다가 진화됐다고 해서 다시 왔는 데 오후 3시께 다시 불길이 올라온다고 해서 또 대피했다"며 "지금도 워낙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집에 돌아가기가 겁이 난다"고 말했다.

○…4일 저녁부터 난 불은 밤새 낙산도립공원 부근 마을을 태웠지만 이장과 통장, 소방대원들이 밤새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주민들을 대피시킨 덕분에 인명피해가 없었다. 주민 최성갑(77)씨는 "새벽에 마을 방송도 나왔고, 사람들이 우리집 문을 자꾸 두드려서 대피했다"며 "오늘 돌아와 보니까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채 집이 모두 타버렸다"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양양군청 고완주 자치행정과장은 "불이 밤에 시작됐는 데도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은 이장과 통장, 소방대원들이 신속하게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주민들을 대피시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통 체증 때문에 소방차가 현장 접근에 어려움을 겪어 조기 진화에 차질을 빚었다. 이날 양양과 속초를 잇는 7번 국도나 낙산도립공원 내부 도로는 현장을 빠져나가려는 관광객들과 주민들 차량이 뒤섞여 최악의 체증을 빚는 바람에 소방차들이 현장으로 접근하는 데 애를 먹었다. 또 낙산도립공원 상가지구에 있는 이른바 ‘먹거리촌’ 목재건물 5채가 불에 탈 때에는 한쪽에선 진화작업에 진땀을 흘리고 있는 동안, 다른 한쪽에선 불 구경을 하려고 차를 길가에 세워 놓은 이들도 눈에 띄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속초소방서 소방차량 43대로는 양양의 불길을 잡을 수 없게 되자 경기도는 물론, 인천, 대전, 충북 등지의 소방차량 60여대가 출동해 진화를 도왔다. 5일 밤 헬기가 철수한 뒤 진화 작업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소방 당국은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타 지역 지원 차량에 속초 현지 차량을 섞어 기동소방대를 편성했다, 육군은 이날 ‘양양 산불 진화 작전’에 8군단 소속 군인 3,500여명을 동원한 데 이어 속초 사수 작전 등에 1만여명을 추가 투입했다.

○…강원 양양 지역의 산불로 천년 고찰인 낙산사의 주요 건물과 일부 문화재가 소실됐지만 보험을 통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5일 "전국의 사찰들은 대부분 화재보험 등에 가입하지않고 있다"며 "현재까지 낙산사도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소실된 문화재 등에 대해 보상을 받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찰의 보험 가입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은 사찰들이 비싼 보험료를 이유로 보험 가입을 꺼리는 데다 보험사들도 사찰 건물과 사찰 소장 문화재에 대한 가치 산정이 어려워 사찰의 보험 가입을 기피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금강산관광도 차질을 빚고 있다. 현대아산은 고성지역 산불로 통행이 위험해짐에 따라 금강산 당일관광을 마치고 이날 오후 육로를 통해 귀국할 예정이던 관광객 223명이 금강산에서 하루를 더 묵게 됐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4시30분 금강산으로 떠날 예정이던 관광객 360명의 여행 일정도 취소돼 전액 환불 조치했다. 또 6일 출발예정인 금강산 당일 및 1박2일 관광객 400여명의 관광계획도 취소됐다. 현대아산측은 산불로 금강산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관광객들이 가급적 6일 중 귀국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양양=곽영승기자 최영윤기자 문준모기자

■ "산불 본지 5분안돼 집까지 옮겨붙어"

5일 강원 양양군 산불로 15채의 집이 전소되고 41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양양읍 사천리와 기정리 일대는 한 순간에 마을이 폐허로 변해 무너져 내린 집들에서 매캐한 냄새와 하얀 연기만 뿜어 나왔다. 숲 덤불이 불에 타면서 발생한 재가 동네 야산을 시커멓게 덮었고 화마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주민들은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정도로 불어대는 강풍에도 집 앞을 좀처럼 떠나지 못했다.

기정리 3칸짜리 집에서 닭 50마리를 키우고 3,200여평의 논에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는 강계도(80)씨는 "살림살이는 물론 애써 키우던 닭 50마리와 콤바인, 트랙터, 경운기 어느 것도 건지지 못했다"며 아직도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는 집 잔해를 뒤지고 있었다. 강씨는 "물에 담가 둔 볍씨마저 모조리 타버렸다"며 "올해 농사는 물론 앞으로 살길마저 막막하다"고 가슴을 쳤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기정리 최훈남(68·여)씨의 집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 무너져 내렸다. 최씨는 "아침 6시께 맞은 편 산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봤지만 설마 우리 집까지 불씨가 날아오리라고 생각조차 못했다"며 "5분도 안돼 집 여기저기에 불씨가 날아와 붙었다"고 끔찍한 당시의 상황을 기억했다.

사천리 최규순(74·여)씨 집도 마찬가지. 전날 장터에 다녀오던 중 발을 헛디뎌 왼쪽 무릎이 불편한 상태였던 최씨는 아침 7시께 뒷산에 시뻘겋게 불이 치솟는 것을 보고 혼비백산 도망쳤다. 속옷 하나, 칫솔 한개 챙기지 못한 채 질펀한 논길을 쓰러지듯 뛰쳐나온 것. 반면 사천리 정순남(74·여)씨 집은 뒷마당에 쌓아 둔 장작만 탔을 뿐 용케 불이 옮겨 붙는 것은 피했다. 정 할머니는 "하도 강하게 부는 바람에 불똥이 여기 저기 튀었지만 운 좋게 우리 집을 피해 간 것 같아 다행이다"라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양양=최영윤기자 daln6p@hk.co.kr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 소방당국 대처 문제점/ 초기진화 성공 오판에 강풍속 잔불 재앙으로

꺼져가던 강원 양양지역 산불이 커진 것은 소방당국이 잔불을 제대로 끄지 않고 판단을 잘못하는 등 안이한 대처와 인력과 장비의 부족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소방당국은 5일 오전 강원 양양지역의 산불이 잦아들자 초기 진화에 성공한 것으로 판단, 이 지역에 투입했던 소방헬기 14대 중 4대를 비무장 지대인 고성 산불지역으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소방당국이 봄철에는 오후부터 바람이 거세진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야속하게도 이날 오후 1시부터 최고 초속 32m를 넘는 강풍이 건조주의보가 내려진 이 지역에 불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꺼져가던 잔불이 다시 살아나면서 천년 고찰 낙산사 쪽으로 번져갔다.

그제서야 소방당국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헬기를 양양쪽으로 다시 돌렸지만 이미 낙산사는 불길에 휩싸여 재로 변해 버렸다.

낙산사 주지 스님은 "오늘 아침 헬기가 물을 뿌린 다음에 잔불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고성으로 가버렸다"며 "‘낙산사에 유물이 많으니 불을 확실히 끌 수 있도록 헬기를 남겨달라’고 부탁했지만 너무 빨리 철수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낙산사 측은 이날 오전 긴급 구입한 소화기 150개를 이용, 자체적으로 불길을 잡으려 했지만 양양 지역을 휘감은 산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화재 전문가들은 "현재 소방인력과 장비로는 제대로 대형 산불을 진화할 수 없다"며 "초대형 헬기를 늘리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숲이 우거진 산에 불이 나면 일반 소방 장비로는 제대로 끌 수 없어 헬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산림청이 보유한 헬기 41대 가운데 산불 진화에 적합한 초대형 헬기는 2대(1대 임차)에 불과한 실정이다. 초대형 헬기는 2001년에 한 대를 구입한 뒤 올해 한 대를 추가 구입키로 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한 대를 임시로 빌려 쓰고 있는 실정이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동해안 잦은 대형산불 왜? 푄현상으로 대지·대기 건조 봄철 강풍 등도 진화 악조건

왜 봄철만 되면 강원 동해안 지역에 산불이 자주 발생하고, 대형 산불로 이어질까.

우선 강풍과 건조한 날씨에 높은 경사도의 지형적 특수성, 지방자치제 이후 이완된 산불감시체제 등 복합적 원인이 작용하고 있다. 동해안에는 봄철 양강지풍 일구지난설(襄江之風 一口之難說)이라는 말이 있다. 양양·강릉 사이의 바람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거세다는 뜻이다.

이번 산불도 동해안 일원에 4일 오후 4시30분부터 7일까지 강풍주의보(초속 14~20c)가 내려진 가운데 발생했다. 바람은 낮에는 바다에서 산으로, 밤에는 산에서 바다로 불고 계곡사이에서 돌풍이 잦아 헬기와 진화대의 접근이 어렵다.

특히 백두대간으로 인한 푄현상이 부채 역할을 한다. 남쪽에 고기압, 북쪽에 저기압(남고북저)이 자리잡으면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바람(남서풍)이 부는데 이 바람이 백두대간을 넘으면서 고온 건조한 강풍으로 변한다. 남고북저 현상은 사계절 언제든 발생하지만 봄철 건조한 날씨와 겹쳐 화약고로 돌변한다.

동해안 일대는 봄철이면 수시로 건조주의보가 내려진다. 강릉기상청은 지난달 31일부터 3일까지 동해안 일원에 건조주의보를 발령했다. 산속에 쌓인 낙엽은 불쏘시개나 다름없다. 영동지역은 백두대간에서 바다에 이르는 지형이 급경사라서 물을 오래 저장하지 못하는 것도 한 원인이다. 여기에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온상승도 한 몫을 한다.

양양=곽영승기자 yskwa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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