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문제,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 문제로 우리나라 온 국민이 일본에 크게 분노하고 있다. 그런데 때를 맞춰 서울시 관계자는 ‘윤중로 벚꽃놀이’를 서울시 3대 명물로 제정하였다고 한다. 일본에서 ‘벚꽃 구경’은 일본인의 정신세계를 설명하는 키워드인 ‘벚꽃 이데올로기’와 일치하는 것이다. ‘벚꽃 이데올로기’는 우리나라 일제강점기를 한마디로 축약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일본에서 벚꽃은 청일전쟁 발발을 전후해 총을 들고 싸우는 병사의 벚꽃, 세계 만국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일본의 벚꽃으로 급속히 변했다. 벚꽃은 일본 군국주의의 꽃으로 이미지화했다. 벚꽃이 화려하게 피었다가 하룻밤에 확 지는 단명을 표상하듯, 벚꽃 이데올로기의 골자는 ‘일본인은 목숨을 아끼지 말고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라’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있던 우리 국민도 일본인들처럼 천황에게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라는 뜻이 그대로 이어진다.
우리의 젊은 여성들이 위안부로 끌려갔을 때 그 이름이 ‘정신대’였던 것은 이를 말해준다. ‘정신대’의 ‘정신(挺身)’은 솔선하여 앞장선다는 뜻이다. 일본군이 전장에서 승리를 거두게 하기 위해 우리 여성들이 그들의 성적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에 기꺼이 솔선하여 나선다는 것이다.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가.
여의도는 더구나 국회의사당이 지라잡고 있는 곳이다. 수치스러운 역사를 상기시키는 일본 정신의 상징인 벚꽃구경 놀이가 여기에서 행해지는데, 3대 명물로 지정됐다니 당혹스럽다. 하물며 우리 정신 말살을 기도한 일본의 ‘벚꽃 이데올로기’ 산물로 심어진 벚꽃들을 바라보며 찬탄하라는 행사를, 그것도 사계절 불야성의 행사를 하겠다니 이런 사실을 두고 일본인들은 얼마나 우리를 조소할 것인가.
더구나 현재 우리는 일제의 잔재를 곳곳에서 발굴하여 이를 없애고자 하는 것을 국가 시책으로 하고 있는 시점에 있지 아니한가.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고 애국가를 부르고 있지만 서울시 어느 곳에 벚꽃 단지처럼 무리지어 피는 무궁화 단지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자국의 국화(國花) 거리는 없으면서 남의 나라 국화, 그것도 역사적으로 가장 뼈아픈 상흔의 상징인 벚꽃단지를 명물거리로 만들겠다는 발상에 분노한다. 벚꽃놀이 불야성을 만드는 비용으로 서울 어느 곳을 지정하여 무궁화를 벚꽃 수보다 더 많이 심어 ‘무궁화 구경’의 불야성 거리를 만들면 얼마나 의의있는 일이 될까.
고영자 한국문학비평가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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