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정치학자들의 입장이 너무 정해져 있어 문제 해결과 대안 마련을 위한 토론이 실종됐다. 입장의 차이만 존재한다."
B: "그 입장은 대개 사람과 연결돼 있다. 철학이나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 입장의 차이가 아니다."
어느 월간지 기사에서 가져온 대화 한 토막이다. B는 노무현 정권에서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서동만 상지대 교수인지라 경험담으로 여겨도 무방할 듯 하다. 이 대화는 지금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분열주의의 정체에 대해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최근 보수 지식인들이 총궐기하다시피 하면서 노정권에 대해 ‘좌파’라는 딱지를 열심히 붙여대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더욱 그렇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요 분열 전선은 좌우(左右) 갈등인가? 아니다. 이념에 매몰된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그들은 소수다. 보수 지식인들의 지적 수준이 노정권을 좌파로 판단할 만큼 낮진 않다. 좌파 딱지는 그냥 비난의 용도로 쓰는 것 뿐이다.
한국사회의 극심한 분열주의는 ‘승자 독식주의’에서 비롯된다. 승자 독식주의는 강한 연고·정실 문화로 인해 증폭된다. 줄 한번 잘못 서면 큰일난다. 줄서는 게 싫어서 점잖게 지내는 사람에게도 기회는 오지 않는다. 줄선 사람들끼리 다 해먹기 때문이다.
노정권은 ‘지배세력 교체’를 내세움으로써 승자 독식주의를 강화했으니, 그만큼 반발이 거세지는 건 당연하다. 체면상 ‘밥그릇 타령’을 할 수는 없으니 명분을 갖춰 욕하는 게 주로 ‘좌파 타령’이다. 노정권은 승자 독식주의에 대한 반발을 ‘수구 기득권세력의 저항·반동’으로 규정함으로써 그런 이념공세에 맞장구를 치는 동시에 자신의 탐욕을 정당화한다.
노정권의 ‘지배세력 교체론’과 그에 따른 ‘코드 인사’는 타당한 면이 있지만, 이제 그런 개혁 패러다임 자체를 의심해 볼 때가 된 것 같다. 부작용이 장점의 가치를 훨씬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갈등비용이 너무 높고 타락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개혁’이 서민의 민생과는 별 관련이 없다는 건 한국사회를 ‘개혁 대(對) 보수’의 구도가 아니라 ‘엘리트 대(對) 비(非)엘리트’의 구도로 이해하는 것이 더 옳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해준다. 즉, 개혁·보수의 구분을 넘어서 늘 재미보는 건 엘리트뿐이지 않느냐는 항변에도 일리는 있다는 것이다.
‘개혁 대통령’이라고 해서 권력욕을 덜 만끽하거나 대통령 대접을 덜 받는 것도 아니다. ‘개혁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개혁’은 자신들이 출세해 ‘코리언 드림’을 이루고 누릴 것 다 누리기 위한 도구적 구호로 써먹는 면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공기업에 낙하산으로 파견된 ‘개혁 임원’들 중에 이렇다 할 개혁을 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들려오는 건 자신의 연고·정실 네트워크에 포진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베풀었다는 이야기 뿐이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재미를 보는데다 ‘도덕적 우월감’까지 누리면서 보수파를 향해 ‘수구 기득권세력’이라고 삿대질을 해대는 건 위선이다. 정권이 논공행상과 보은을 위한 전리품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승자 독식주의로 인해 배제된 사람들이 엄청난 박탈감을 느끼지 않게끔 배려하는 일도 필요하다.
꼭 개혁파가 맡아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그걸 제외하곤 문호를 대폭 개방해야 한다. 개혁파가 수장으로 있는 조직에서 하는 모든 일을 개혁파에 줄선 사람들이 독식하는 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거가 밥그릇을 쟁취하기 위한 사생결단의 싸움이 되지 않게끔 많은 영역을 중립화시키는 것이 진정한 개혁일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권이 바뀌어도 변치 않는 시민사회의 상식으로 운영되는 영역이 넓어질 때에 비로소 민주주의가 성숙해지고 사회가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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