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를 계기로 세계인의 눈길이 바티칸에 고정되고 있다.
8일 금세기 최대 행사로 기록될 장례식이 거행되고 17~22일에는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가 시작된다. 늦어도 월말에는 신임 교황이 정해져 교황청과 세계 가톨릭 교회는 4월 내내 추도와 축하의 시간을 갖게 된다.
호아킨 나발로 발스 교황청 대변인은 4일 "교황의 장례식이 8일 오전 10시(현지시각) 거행된다"고 밝혔다. 나발로 발스 대변인은 "대부분의 교황이 묻힌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에 안장될 것"이라며 "교황은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교황선출을 위한 추기경단 비밀회의인 콘클라베의 시작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날 추기경단은 장례절차 및 새 교황 선출, 요한 바오로 2세의 유언공개 등을 위한 첫 특별회의를 2시간 30분 동안 열고, 본격적으로 ‘세기의 장례식’ 준비에 들어갔으며 참가한 추기경은 65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례식에는 세계 정치·종교 지도자 200여명이 대거 몰려 정상급 조문외교가 예상된다. 미국에선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참석키로 했고,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등 다른 국가들도 국가원수급 인사들이 조문할 예정이다. 세계의 가톨릭 순례자들도 최대 200만명까지 교황청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로마시는 1만5,000여명의 군과 경찰을 동원해 주요 인사와 시설 경비에 나서는 등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벌써 몰려든 수십만 인파로 교황청이 소재한 로마의 숙박시설이 꽉 차 체육시설에 텐트 촌이 마련됐다. 일부 순례자들은 성 베드로 광장에서 밤을 지새고 있다. 광장에는 멀리 남미 인도 아프리카의 신자들도 속속 도착해 장사진을 이루었다. 교황청은 4일 오후 교황의 시신을 성 베드로 성당으로 옮기고 일반인들에게 공개했다. 종교전문가들은 이번 장례식을 교황의 권위와 가톨릭의 위상을 재확인하는 행사로 보고 있다. 미국의 경우 그 권위와 위상 때문에 요한 바오로 2세 재임 중 취임했던 5명의 대통령이 모두 그를 알현, 정치·윤리 문제에서 일체감을 가지려 애썼다는 것이다.
교황청은 이에 앞선 3일 ‘주님 자비 주일’ 미사에서 요한 바오로 2세가 남긴 마지막 기도문도 공개했다. 기도문은 "마음을 변화시키고 평화를 주는 것은 사랑입니다. 세상은 정말로 이를 알아야 하고 주님의 자비를 입어야 합니다"라고 사랑의 힘을 강조했다. 기도문은 또 "주님은 때로 악의 권세와 이기심, 두려움에 지배되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에게 드넓은 사랑과 화해를 선물로 주신다"고 역설했다.
세계 주요 인사들과 언론들은 추도에 이어 온갖 미사여구로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연일 찬사를 보내고 있다. 종합해보면 그는 ‘평화의 상징, 위대한 신의 종, 세계의 정신적 지도자,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의 보호자, 위대한 믿음과 신념을 지닌 인물’이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 소련 대통령은 "최고의 휴머니스트"라고 칭찬했고, 브라질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추모시에서 "당신께서 이 땅에 계셨음을 감사드립니다"라고 썼다. 요한 바오로 2세와 8차례 ‘동서 종교의 만남’을 가진 티베트 불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공산주의와 싸운 경험을 교황과 공유했었다"고 말했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바티칸 외신=종합
■ 개혁인물? 보수인물? 교황자격 의견 분분
21세기형 교황은 어떤 인물이 돼야 할까. 요한 바오로 2세의 자리를 이어받을 교황이 갖춰야할 자질과 덕목을 두고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바티칸은 차기 교황에 지난 4반세기 동안 가톨릭 교회의 변화상와 당면과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지도력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교회가 직면한 현실이 26년 전과 달리 매우 복잡해진데다 교회의 핵심 과제에 대한 시각도 제각각이어서 교황 자격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출된 1978년 당시에는 유럽권이 가톨릭 교회를 장악했고 냉전체제 속에서 반공 이데올로기의 편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간 가톨릭은 서유럽 중심의 교회에서 전지구적 교회로 변모했다. 특히 전세계 가톨릭 인구의절반을 점하는 중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제 3세계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 두드러진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과학 생명공학 등이 제기하는 사회, 윤리적 이슈와 교리 사이의 간극 해소, 문화적 다양성에 적응하기 위한 지역 교회의 자율성 확대 및 바티칸 권력의 탈 중심화 등 요한 바오로 2세가 남긴 과제도 난제이다. 따라서 차기 교황의 성향이 개혁적 또는 보수적이어야 하는지, 관리형 또는 이상주의형이어야 하는지 등을 두고 다양한 견해가 분출한다.
교황 선출 추기경단 비밀회의인 ‘콘클라베’가 가톨릭 수장을 결정할 뿐 아니라 교회의 향후 진로를 가늠하는 잣대인 만큼 외신들은 제3세계의 부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4일 "교회의 시간과 돈, 에너지를 제3세계에 투자할지 아니면 유럽이나 북미에 투자할 지를 결정하는 게 가톨릭 리더십이 당면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때 인적 자원과 교리적 배경의 최대 공급처였던 유럽에서 가톨릭이 생존의 길을 모색할 지, 제3세계의 민생 및 빈부격차 등의 현실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개신교 이슬람 힌두교 불교 등 타 종교와의 공존 문제를 해결하는데 힘을 모을 지에 따라 차기 교황의 향방이 갈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역에 따라 차기 교황의 핵심 자질을 달리 꼽고 있다. "진리 인간 인간구원에 대한 애정과 용기와 힘을 갖춘 사람이 필요하다"(장-마리 뤼스티제 추기경·프랑스) "가난한 자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자일 것이라고 확신한다"(테오도어 맥캐릭 추기경·미국) 등 서유럽 및 미국의 추기경들은 교황 자질의 일반론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남미권에서는 "차기 교황은 교회가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클라우디오 우메스 상파울루 교구 대주교·브라질) "제3세계와 남미에 큰 기회가 열렸다"(프란시스코 하비에 에라주리스 추기경·칠레)고 말하며 비유럽권 교황의 탄생에 기대를 걸고 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 교황에게 비판적 견해도…'정교회와 갈등' 러 방문 안해 진보파선 "권위주의" 꼬집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찬사만 쏟아지는 것은 아니다. 종교적, 정치적 입장차로 끝내 화해하지 못한 러시아 정교회와 일부 공산권 국가들, 가톨릭 진보파 등은 요한 바오로 2세의 정치적 성향과 권위주의를 비판했다. 교황은 그리스 등 다른 정교회 국가는 방문했지만 러시아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러시아 정교회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주선한 교황 방문을 거부하는 등 골이 깊다.
러시아 정교회는 가톨릭 교회가 서방의 자금력을 동원해 정교회 신자들을 개종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러시아 국민들은 강한 러시아연방의 붕괴를 초래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을 교황이 지지했다는 이유로 복잡한 감정을 지니고 있다.
중국은 교황청이 대만과 수교하고 있고 공산주의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중국이 교회의 권위에 앞서 공산당의 권위를 먼저 인정할 것을 요구해왔기 때문에 교황은 중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브라질의 해방신학 이론가인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는 "교황은 해방신학을 공산주의를 위한 ‘트로이 목마’로 간주하며 많은 주교를 해임하는 등 잔인하게 대처했다"고 주장했다. 1970~80년대 빈민을 위한 해방신학을 주도한 보프 신부는 교황에 의해 사제직을 박탈당했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동유럽 공산주의는 비판한 교황이 남미의 가톨릭 독재정권, 마피아와 결탁한 이탈리아의 부패한 가톨릭 정부에 대해 침묵했다"고 꼬집었다.
가톨릭 개혁을 표방하는 각국 단체들의 연합체인 ‘우리 자신이 교회’(We Are Church:WAC)는 "교황은 외부에는 개방적인 인물로 비쳐졌지만, 교회 내부에는 중앙집권체제와 권위주의적 구조를 강화해 공포와 경직된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주장했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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