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의 외국자본에 대한 감독 강화 움직임이 외국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은행의 외국인 이사 수 제한 움직임에 반대 의사를 밝혔고, 유럽연합(EU)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문제가 된 정부조치들이 실현 가능성이 없거나 실효성이 미미한 것들이어서, 실속은 없이 외국인들의 저항만 불러 일으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 해외 반발 = 4일 금융계에 따르면 USTR은 최근 ‘2005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한국 국회가 은행의 외국인 이사 수 및 거주지 제한 규정을 두는 입법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미국은 이런 법 개정이나 유사한 조치가 한국 금융부문에 대한 외국인 투자에 부정적 신호를 줄 것이라는데 주목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연합(EU)도 은행의 외국인 이사 수를 제한하려는 은행법 개정안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를 준비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자체 입수한 EU 보고서를 인용해 "EU는 한국이 서비스 교역에 관한 일반 협정에 은행 이사의 국적 제한과 같은 내용을 포함시킨 적이 없기 때문에 은행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WTO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또 "외국 투자자들은 상장 기업 지분을 5% 이상 갖고 있는 모든 투자자들에게 경영에 영향을 미치려는 계획을 밝히도록 요구하는 제도 개정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며 다시 한번 ‘5%룰 개정안’에 문제를 제기했다.
◆ 실효성 여부 = 은행 이사 수 및 거주지 제한 요건을 담은 은행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된 것은 1월말.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이 유사한 문제 제기를 한 후였다.
하지만 현재로선 법제화 가능성은 낮다. 주무 장관인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이 최근 "한국 정부는 국적을 기준으로 이사 수를 제한하는 법이나 규제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이날 발언은 윤 위원장과도 사전 조율이 이뤄졌다는 것이 재경부측 설명이다.
‘5%룰’ 개정안 역시 상징성 외에 실효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2일까지 상장 기업의 5% 이상 대주주를 대상으로 재보고를 받은 결과 경영참가 목적의 투자라고 밝힌 외국인 투자자는 71곳.
투자 목적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지만, 정작 해외 여론이 문제 삼았던 취득자금 원천 항목에 대해서는 포괄적인 답변 일색이었다.
일례로 소버린자산운용의 경우 SK LG LG전자 등의 지분 취득자금 조성경위 및 원천에 대해 ‘보유 현금 및 주식 처분 대금’이라고 밝힌 뒤 "소버린 그룹 소속 자회사는 국제 자본시장에서 다년간에 걸친 투자 활동을 통해 자산을 쌓아왔다"는 주석을 다는 정도에 그쳤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내용은 더 요구할 수 없을 뿐더러, 추후 기재 사항을 변경하더라도 별다른 제재 수단도 없다.
금융계 관계자는 "외국인들이 구체적인 내용은 외면한 채 악의적으로 대응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며 "우리 정부 입장에서도 외국자본 감독 강화의 실효성은 제대로 거두지도 못하면서 거센 반발만 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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