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기업들이 극심한 내수부진에도 불구하고 수출업종을 중심으로 경이로운 실적을 거뒀다는 소식은 크게 반길 일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우울한 그림자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거래소 상장 531개사의 지난해 총 매출액은 608조여원으로 전년보다 17% 남짓 늘어난 반면 순이익은 갑절로 늘어 사상 최대인 49조5,239원에 달했다. 코스닥 등록 768개사의 매출 역시 전년 대비 19% 증가한 56조여원이었으나 순이익은 134%나 늘어난 1조6,667억원에 이르렀다. 아울러 평균 부채비율이 1년 만에 91.2%로 급감했고, 금융사 10개사를 뺀 제조업 521개사의 영업 이익률은 9.7%까지 치솟았다.
문제는 이 같은 화려한 실적이 대부분 전기·전자, 철강 및 화학, 운수·창고 등의 수출업종과 10대 재벌그룹에 의해 주도됐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음식료업 유통업 섬유 의복 등 장기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 내수업종과 중견·중소기업은 정체 혹은 마이너스 성장을 면치 못하는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했다. 투자 부진이 역설적으로 사상 최대 경영성과를 이끌어냈다는 지적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부채비율이 미국이나 일본을 훨씬 밑돌고 주요기업의 현금보유액이 20조원을 넘본다는 것은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에 소홀했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최근의 경기호전 조짐에 가속도가 붙지 않는 것도 따지고 보면 기업들이 유가·환율 등 불확실한 대내외 경제환경과 불투명한 경기전망을 이유로 몸을 사리기 때문이다. ‘투자-고용-소비’의 선순환 구조를 회복하지 못하면 양극화 문제의 해결은 더욱 요원해진다. 그렇다고 정부가 막무가내식으로 기업의 투자를 다그칠 수는 없는 일이다. 기업들이 불필요하게 경영권 위협을 받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면서 기업가 정신을 해치는 규제를 꾸준히 혁파하는 것 외에 왕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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