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디 말이 머릿 속을 고통스럽게 휘젓고 있다. ‘역사는 진보하는가?’라는 물음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진부한 명제다. 역사 진보에 의문을 던졌던 학자는 독일의 랑케다. 이 19세기 학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의 저서 ‘젊은이를 위한 세계사’를 보면 조건 없는 진보, 결정적 향상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은 물질영역 뿐이다. 미술 문학 등 정신 면에서 호머나 소포클레스보다 위대한 서사시인이나 비극작가를 찾는다면 웃음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도덕종교에서도 별다른 진보가 없었다고 말한다.
20 세기는 어느 때보다 난폭했다. 막강한 국가들이 등장해서 세계를 강제분할하고, 세계인을 두 번이나 참혹한 대전으로 밀어넣었다. 랑케 식으로 말하면 불행은 자명한 결과였다. 물질과학은 크게 발전했는데 정신은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 일본 등은 힘은 세지만 마음씨는 나쁜 불량배 국가였다. 랑케는 책 끝에서 지도자뿐 아니라 민족 전체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전민족이 그것을 괴로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20세기를 내다본 듯한 예언이었다.
세계인은 21세기 문턱을 넘어 섰어도, 정신은 20세기에 머물러 있다. 미국 ‘9·11 테러’로 경악 속에 열린 이번 세기의 지구 풍경이 결코 예사롭지 않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상투어가 불안을 더해 준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움직임도 자못 수상쩍다. 100년 전인 1905년 2월 일본 시마네현은 일방적으로 독도를 현에 편입했다. 7월에는 일본이 한국을,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하기로 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체결됐다. 일본은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 국가처럼 행세하겠다는 ‘탈아입구(脫亞入歐)’를 표방하며 한국 침략에 나섰고, 결국은 제2차 대전에서 패망했다.
저널리스트 세노 갓파가 전하는 항복의 날 풍경이다. '…상급생이 눈물을 흘리며 장승처럼 서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전사하고 어머니마저 공습으로 큰 화상을 입었다. 나도 큰 소리로 울었다. "전쟁이 도대체 뭔가?" 둘은 소리 치며 울었다. 군인 뿐 아니라 노인, 어린이까지 희생자로 만들어 버린 국가에 대해 화가 났다. 그래서 지금도 기미가요(일본 국가)는 부를 수 없다.> 일본인이 이랬으니 식민지의 한국인의 고초야 더 말해 무엇하랴.
일본은 다시 위험한 놀이를 시작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따라 기미가요 부르기를 거부했던 교사 300여명이 징계를 받았다. 침략역사를 정당화하는 교과서를 내보내고, 독도 문제를 일으키면서 군사대국화하고 있다. 우경화와 제국주의의 망령이 되살아 나고 있다. 유엔에서 전범국가 일본과 독일이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노린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러나 미국은 이들을 지지하고 있다. 나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과의 신의에 따라 이라크 파병도 했다. 그러나 북 핵 문제와 6자 회담 뒤편으로, 또 다른 국제역학 개편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미일 삼각관계는 중요하지만 국제정치적 지형이 우리에게 크게 불리하게 요동치는 것을 보면서, 침묵과 순응으로 일관할 수는 없다. 약한 국력 때문에 동맹의 논리와 질서에 순응해야 한다면, 결국 예속관계로 고착되고 말 것이다. 약국이라도 민족 문제에서는 자기운명에 관해 소신 있게 주장할 공간이 인정돼야 한다.
정부가 대일 강경발언에 나서자 보수층은 신중하지 못하다고 비난의 총구를 내부로 돌리고 있다. 흔히 용감한 사람도 겁쟁이로부터는 ‘경솔한 자’라고 불리고, 경솔한 자로부터는 ‘겁쟁이’라고 불린다. 우리는 분단된 까닭에 동북아에서 힘도 발언권도 약해졌다. 통일도 못하고 주변국에 끌려 다니는 한, 우리는 세계에서 영원히 2류 국가로 남을 것이다. 이제는 분명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우리의 벗인가, 적대국이 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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