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 보면 겉보기에는 중요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또 정반대로 겉보기에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데 실제로는 매우 중요한 것이 있다. 이중 전자, 즉 겉으로는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 3월 25일에 일어났다.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잃어버린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열린우리당의 이철우 의원 등이 이날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함에 따라 열린우리당이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차지했던 과반수 의석을 잃어버린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여당이 과반수 의석을 갖는 여대야소냐, 아니면 여소야대냐는 것은 정치 구도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17대 국회가 갖고 있는 특수한 성격과 역사적 의미를 고려하면 그러하다. 지난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고맙기 짝이 없는 자살골 덕분에 압승을 거둠으로써 냉전반공주의세력이 아닌 개혁적인 자유주의세력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의 다수 의석을 차지한 것이다.
다시 말해, 지난 25일은 단순히 여대야소가 깨어진 선거가 아니라 한국정치사상 처음 있었던 자유주의세력의 다수 의석이 무너진 날이었다. 이 점에서 25일은 겉으로는 한국 정치에 있어서 중요한 날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날이다. 왜냐하면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잃어버렸다고 달라질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처럼 자유주의적 입장으로 변신을 해 여대야소가 무너져도 차이가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정반대로 열린우리당이 그동안 과반수 의석을 가지고도 전혀 개혁을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에도 불구하고 개혁 의지의 부족과 무능력으로 인해 지난 정기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등 개혁 법안 처리에 실패한 것이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과반수 의석을 잃어버렸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 그리고 비록 과반수 의석을 잃어버렸지만 열린우리당이 초심으로 돌아가 제대로 된 개혁 법안들을 추진하려 한다면 민주노동당, 민주당의 지원을 받아 지금도 얼마든지 통과시킬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건만, 열린우리당은 오는 4월 30일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해 과반수 의석을 탈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보궐선거 지역인 충남 아산에 이명수 전 충남 부지사를 공천한 것이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입만 열면 3김식의 밀실공천이 아니라 당원들이 후보를 뽑는 상향식 민주 정당을 만든다고 큰 소리를 쳐 놓고 전략지구라는 미명 하에 또 다시 밀실공천을 한 것이다.
게다가 자민련 출신으로 대통령 탄핵에도 동참했던 반개혁적 인사를 단순히 당선 가능성이 높고 최근 추진되고 있는 중부권 신당을 저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공천한다니, 어안이 벙벙하다. 지난 대선에서 당을 옮긴 김민석 전 의원을 철새라며 ‘김민새’라고 조롱했던 사람들이 이제 자기들의 당을 새로운 철새 정당, 즉 ‘열린 철새당’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평소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불효자 짓은 다하고도 정작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갑자기 효자로 변해 걸핏하면 부모님 이야기를 하며 우는 사람을 보게 된다. 이 때 주위에서 혀를 차며 하는 이야기가 살아 계실 때 잘 해 드리지 왜 이제 와서 난리냐는 뜻의 "있을 때 잘하지"이다.
열린우리당에 해 주고 싶은 말이 바로 그 말이다. 과반수 의석 차지하고 있을 때 잘하지, 과반수 의석을 가지고 있을 때는 아무 것도 못하고서 이제 와 왜 이 난리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말, 열린우리당을 향해 고함이라도 질러 주고 싶다. "있을 때 잘하지." 그리고 화환이라도 보내주고 싶다. "축! 열린 철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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