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잠실, 신촌, 청량리, 삼성동, 압구정동, 강남 고속터미널, 미아동. 모두 서울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부심들이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한테 ‘부심’이라는 말은 낯설다. 우리의 실생활 속에서 이런 동네들은 모두 백화점으로 유명한 동네들이다. 물론 몸통이 빠졌다. 소공동과 남대문이다. 부심이 아니라 서울의 심장부, 한 가운데이다. 이곳은 더 심하다. 서울특별시인지 백화점 특별시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이다.
서울이 비대해지다 보니 행정가들이나 도시계획가들은 서울의 미래를 부심권별로 나누어 계획하고 꾸려가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가져왔다. 문제는 부심의 성격이다. 떡 떼듯 물리적 크기로 나눈 것일 뿐, 정성적(定性的)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빠져있다. 그 허점을 백화점이 파고 들어왔다. 이제 백화점 빠진 부심은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부심이란 것이 별 것 아니다. 그저 우리가 사는 동네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백화점을 빼고는 더 이상 얘기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백화점이 중심이 되어버린 도시. 과연 자랑할만한 일인가. 우리도 그만큼 잘 살게 되었다는 훈장일까. 물론 백화점이 도시의 중심이 된 현상은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반드시 이래야만 되는 것일까. 우리는 이것이 자본주의의 참 모습이요, 이상적 종착점으로 알고 있다. 후기산업사회의 물질적 풍요를 상징하는 성공담으로 기록하고 싶어한다. 이것을 이루었으니 이제 우리도 세계 선진국의 대열에 들었다고 자랑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이것은 소득이나 문명체계의 문제가 아니다. 의식수준의 문제요, 문명의 질의 문제이다. 서구 선진국 어디를 가봐도 이렇지 않다. 도시의 중심은 정신적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 대상은 아주 많다. 역사유적, 문화시설, 예술시설, 종교시설, 학문 교육시설 등 정신적 가치를 담고있는 공간이 도시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그 옆으로 숨통이 트일 공원이 함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모두 낯선 대상들이다. 도심의 그 비싼 곳에 돈도 안 되는 문화시설과 공원이라니, 사회주의가 아닌 바에 그것이 가능할까. 고궁이야 몇 년에 한 번 잠깐 들르면 된다.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돈도 못 버는 주제에 괜히 고상한 척 잘난 체나 하는 미운 오리 새끼일 뿐이다. 이것이 도시의 중심부에 대한 우리의 의식구조이다. 그리고 서구 선진국도 이럴 것이라고 너무 쉽게 결론지어 버린다. 그러나 우리가 모델로 삼고 있는 서구 선진국의 도시들에서는 이런 저런 종류의 다양한 정신적 공간들이 도시의 중심을 당연히 지키며 사람들에게 정신적 자양분을 펑펑 공급하고 있다.
화점이란 어떤 공간인가. 한마디로 물건을 빼곡하게 쌓아놓고 장사하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정신적 가치 운운하면 몰매 맞는다. 모든 것은 반드시 높은 밀도로 촘촘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가능한 한 큰 도로와 여러 개의 지하철 노선으로 둘러싸여야 된다. 이런 환경을 사람들은 ‘황금 입지’라며 군침을 흘리고 발을 동동 구르며 애타게 갖고 싶어한다. 공원이니 숨통이니 했다간 몰매 맞는 정도를 넘어서 전쟁이 벌어진다.
백화점은 부심별로 지역의 맹주로 군림하고 있다. 반드시 지하철 역을 끼고 있다. 지하철 역 위에는 그 동네에서 가장 큰 버스정류장도 함께 있게 마련이다. 도시의 제1 요소인 ‘이동’을 점령한 것이다. 덩치도 동네에서 제일 크다. ‘사람 먹는 하마’이니 이것은 곧 ‘돈 먹는 하마’에 다름 아니다. 이렇다 보니 도시 인프라가 우선적으로 집중된다. 교통시설은 물론이요 전기, 상하수도, 가스 등에서 최우선권을 가진다. 세금도 가장 많이 낸다. 고마워할 일은 아니다. 세금을 가장 많이 내기 위해서는 돈을 가장 많이 번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들은 권력으로 직결된다. 굳이 정치권력과의 관계까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백화점은 동네별로 주민들의 일상을 지배한지 오래다. 사람들은 백화점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자신들이 키운 공룡으로부터 지배를 당하고 있다.
잠실 롯데. 이곳은 ‘롯데 공화국’이다. 롯데 백화점, 롯데 호텔, 롯데 월드가 스크럼을 짜고 블록 하나를 왕국으로 만들었다. 남산만큼 부푼 흰 배를 드러내며 큰 거인 셋이 주변을 지배한다. 이 일대는 상습 정체지역이다. 인간적 척도는 모래알처럼 부스러졌다. 주변 조형환경은 거인이 주도하는 울트라 스케일의 질서에 맞춰야 한다. 인간적 척도라도 지키려 들면 사방에서 눌려 ‘짜부’가 되어버린다. 도대체 이 동네는 공간지도가 그려지지를 않는다. 큰 타조알 몇 개가 머리 속을 꽉 채운 느낌이다. 최근에는 왕국이 ‘광개토(廣開土)’의 업적을 이루었다. 길 건너편에 롯데 캐슬이 황금빛 몸통을 빛내며 완공을 앞두고 있다. 그것도 한 채가 아니라 쌍둥이다. 무지하게 높다. 롯데 호텔에 버금가는 높이이다. 롯데 공화국을 지키는 말 그대로 ‘캐슬’이다. 무엇이 그리도 불안해서 지키려 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잠실 지하철 역. 지하철 이용인구가 2위인 역이다. 롯데 공화국 때문에 커진 건지, 큰 역을 롯데 공화국이 접수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 많은 지하철 이용인구가 롯데 공화국 시민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일부는 매우 자발적으로, 일부는 적극적으로 충성을 맹세하며, 일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부는 멍하니 있다가, 일부는 불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일부는 저항도 해보다 불가항력적으로 등등.
문제는 심각하다. 지하철 역과 롯데 시설들이 한데 뒤엉켜 구별이 불가능하다. 지하철 역은 엄연한 공공 영역이고 롯데 시설들은 사적 영역이다. 롯데 시설들이 면적도 더 넓고 훨씬 현란한 상태에서 둘이 섞여버리다 보니 공공 영역마저 롯데 것처럼 되어버렸다. 어디까지가 지하철역이고 어디부터가 백화점인지 구별이 안 된다.
백화점 입구에는 질펀한 좌판이 벌어졌다. 노점상이 아니다. 백화점 판매시설이 밖으로 나온 것이다. 간판만 해도 그렇다. 지하철 관련 표지판과 백화점 간판이 뒤죽박죽 섞여있다. ‘나가는 곳’ 뒤로 강렬한 원색 간판의 ‘롯데 월드어드벤처’와 ‘롯데 호텔’이 줄줄이 서있다. 백화점이 지하철을 끼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지하철이 백화점에 속해버린 느낌이다. 백화점에서 지하철을 관리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지하철 통로에까지 자기네 좌판을 벌린 이 백화점이 정작 소공동에서는 노점상을 몰아내는 일을 저질렀다. 백화점 품위에 손상이 간다는 이유에서다.
디 이곳뿐이랴. 시내 곳곳이 마찬가지이다. 한마디로 도시 전체가 난장판이다. 이런 현실은 집 밖을 나오면 피할 수 없는 너무 큰 현실이 되어버렸다. 견물생심이라고 물신(物神)의 현란한 유혹에 한 번 걸려들면 그것을 갖고 싶어진다. 꼭 필요한 것인지는 더 이상 판단 기준이 되지 못한다. 이를 위해 돈을 더 벌어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 집은 부동산 투기대상이 된다.
집이 아파트로 단일화해 가고 부동산 투기대상으로 변질되어 가는 현상과 백화점이 도시의 중심을 지배하게 된 현상은 사실 동의어다. 백화점 쪽에서 보면 높은 밀도로 군집한 소비자가 공략과 관리가 쉽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막을 봐도 백화점 주변에는 같은 이름의 건설회사에서 지은 아파트 단지가 함께 있는 경우가 많다. 거대한 소비 상업구도가 방구석에서부터 도시 중심에 이르기까지 종합선물세트처럼 우리를 공고히 지배하고 있다. 이런 물신의 지배를 단군이래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준 은인이라며 마음으로 섬기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