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환 추기경·장익 주교 기자회견
"참으로 인간을 사랑하신 큰 별이셨습니다."
김수환 추기경과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는 3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요한 바오로 2세를 추모하며 개인적 추억을 이야기했다. 김 추기경은 1978년 요한 바오로 2세를 선출한 선거에 참석했고, 두 차례 한국 방문을 포함해 교황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한국인이다. 또 장익 주교는 로마에서 교황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김 추기경은 "교황님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 사회정의, 세계평화를 위해 헌신하신 분이었다"면서 "그런 분이 세상을 뜨게 되니 정말 큰 별을, 큰 빛을 잃은 애석함을 느낀다"고 애도했다. 추기경은 이어 "교황님은 신자들에게는 목자이고, 아버지 같은 분이고,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면서 몇 차례 이탈리아의 아시시에서 세계 여러 종교 대표들을 초대해 함계 평화의 기도를 한 것처럼 종교가 다르다고 해 차별을 한 적이 없었고 모든 이를 껴안을 수 있는 분이었다고 했다.
한국 방문에 얽힌 얘기도 했다.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가 끝나고 취임하기 전 추기경들과 격의 없이 만나는 기회에 한국을 방문해달라고 했습니다. 그 후 1984년 한국 교회 설립 200주년과 복자 103위의 성인 시성식을 위해 한국에 왔을 때 ‘당신이 나를 제일 먼저 초대한 사람이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김 추기경은 "교황은 한국말로 미사를 하기 위해 당시 로마에 있던 장익 주교에게 한국말을 배웠는데, 장 주교를 ‘마이 프로페서(my professor)’라고 불렀다"면서 "장 주교는 이런 말을 듣는 것은 유일한 사람일 것"라고 했다.
이에 장 주교는 "40여 차례 찾아가 우리말을 가르쳤는데, 그 바쁘신 어른이 제가 가서 5분도 기다린 적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한국말을 배우셨다"면서 한국에 대해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가졌다고 회고했다. 교황은 17차례나 성당에서 한국말로 미사 드리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장 주교는 또 "교황께서 ‘한국에서 모든 발언을 한국말로 해야겠다’고 말씀하셔서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무리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중간에 하다 못하더라도 하는데 까진 해봐야 되지 않겠느냐. 어떻게 한국에 가서 다른 나라 말을 하겠는가’라고 반문하셨다"고 소개했다.
장 주교는 "다른 나라 국가 수반이 ‘안녕하십니까’ 정도만 한국말을 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음을 알 수 있다"면서 "어느 폴란드 사람이 글에서 교황에 대해 ‘제일 어려운 시기에 제일 가까이에 계신 분’이라고 썼는데, 교황이 바로 그런 분이셨다"면서 잠시 말을 잊은 채 눈시울을 붉혔다.
남경욱기자 kwnam@ hk.co.kr
● 종교별 ‘죽음’ 표현/ 가톨릭에서 죽음은 善終
종교별로 죽음을 표현하는 용어는 각기 다르다. 가톨릭에서는 일반적으로 ‘선종(善終)’이라고 쓴다. 이는 ‘착하게 살다 복되게 끝마친다’는 뜻인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줄임말이다. 다만 이번 요한 바오로 2세의 경우에는 한국 가톨릭에서 사회적으로 큰 인물의 타계 시 쓰는 ‘서거(逝去)’ 표현을 한때 거론했으나 3일 ‘선종’으로 확정했다. 그러나 본보는 교황의 위상 등을 고려, ‘서거’로 표기하되 교회 입장에서 쓸 때는 ‘선종’을 병용키로 했다.
개신교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다’는 의미의 ‘소천(召天)’을 쓰나, 이는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이어서 ‘별세(別世)’로 하자는 주장도 있다. 불교용어는 특히 다양해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다’는 뜻의 ‘열반(涅槃)’ ‘적멸(寂滅)’이나 ‘평온한 상태로 들어간다’는 의미의 ‘입적(入寂)’ ‘귀적(歸寂)’ ‘입멸(入滅)’’ 등을 쓴다. 한편 천도교에서는 ‘본래 자리로 돌아간다’는 뜻에서 ‘환원(還元)’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 국내 추모 표정/ 전국 성당 새벽부터 추모 발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거한 3일 마침 주일을 맞은 전국 성당에는 추모인파가 이어졌다. 전국 18개 교구의 각 성당들은 낮 미사에서 교황을 위한 기도를 올렸으며, 주교좌 성당들은 분향소를 마련해 신자와 일반인들의 조문을 받았다.
○…명동성당은 새벽 4시55분 3분간 조종을 울린 뒤 지하 소성당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정오 정진석 대주교가 집전한 추도미사에는 1,500여명이 참석해 본당 안을 가득 메웠으며 미처 자리를 찾지 못한 수백명이 출입문 밖으로 늘어섰다. 이날 낮 조문한 김수환 추기경은 방명록에 "주님. 우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2005. 4.3 김수환 "이라고 적었다.
서울 종로구 궁정동의 로마 교황청 대사관은 서거 소식이 전해진 직후 조기를 게양했다.
○…새벽 5시45분께 명동성당에 첫 도착한 조문객 이한빛(65)씨는 " 조만간 돌아가신다는 소식에 어제 밤부터 마음을 졸이며 뉴스를 보다 선종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왔다" 고 말했다.
오전 10시30분께 문희상 의장이 열린우리당 관계자 10여명과 분향소를 찾아 "평화와 복음의 큰 뜻이 꼭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조문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도 당 관계자들과 함께 오후 1시께 분향소에 들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하소서’라는 글을 방명록에 남겼다.
○…불교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애도문을 통해 "교황님은 가톨릭 복음화뿐 아니라 소외된 이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셨던 분이었다"고 추모했고, 천태종 총무원장 전운덕 스님도 애도문을 발표, "교황님께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최성규 대표회장은 "교황은 소외되고 핍박받는 제3세계권에 관심을 갖고 세계와 인류평화를 외친 평화주의자"라고 애도했으며, 성균관 최근덕 관장도 "교황께서는 평화를 위해 세상에 오셨던 분"이라며 "그 분의 가르침을 후대가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 요한 바오로2세와 한국/ 1984·89년 두차례 訪韓
역대 교황들은 선교사도 없이 탄생한 한국 교회에 특별한 관심을 쏟았으나 그 중에서도 요한 바오로2세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특히 각별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역대 교황 중 유일하게 한국을, 그것도 두 차례나 방문했다. 한국천주교 전래 200주년인 1984년 5월 방한해 103위 복자(福者)에 대한 시성식(諡聖式)을 집례했고, 89년 10월에도 세계성체대회를 주관하려 방한했다. 교황이 재임 시 특정 국가를 두 번 방문한 것 자체가 매우 드문 일이며, 특히 103위가 한꺼번에 성인의 반열에 오른 것은 가톨릭 사상 처음이었다. 전통적으로 로마 베드로 대성당에서 올려지는 시성식을 교황이 직접 해당 국가를 방문해 집례한 것도 극히 이례적이었다.
첫 방한 때 교황은 인사말로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면 불역낙호(不亦樂乎)’라는 논어 구절을 풀어 "멀리서 친구를 찾아오니 기쁩니다"라고 해 여의도광장에 운집한 100만 천주교 신자들을 감격시켰다. 교황은 4박5일 방문기간에 소록도를 방문하는 등 하루 평균 14시간에 달하는 공식일정을 소화해냈다.
또 당시 교황이 장충체육관에서 가진 8,000여 ‘젊은이와의 대화’ 시간에 최루탄 상자를 선물 받았던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교황이 최루탄을 받은 것은 한국 젊은이들의 독재체제에 대한 저항을 고무하고 민주화 열망을 수용한 것으로 여겨졌다. 한편 당시 교황이 명동성당에 미사 집전을 하러 가는 길에 정신이상자가 차량 행렬 잎에 뛰어들어 장난감 총을 겨누는 해프닝이 발생, 국내 신문들이 호외를 발행하는 등 전 세계가 깜짝 놀라기도 했다.
두번 째 방한 때에도 65만여 명의 신자들이 교황을 보기위해 성체대회에 모였다. 교황은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젊은이 성찬제’에도 참석해 아리랑을 합창하고, 광주 망월동 민주화운동 희생자 묘역을 찾기도 했다. 2002년 태풍 ‘루사’로 큰 피해가 났을 때도 교황은 각별하게 한국민을 위해 기도해 주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청을 방문하는 우리 천주교 관계자들에게는 꼭 ‘찬미 예수’‘감사합니다’는 등 한국말로 인사를 하면서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말을 자주했다. 교황은 여건이 조성되면 북한을 방문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뜻을 자주 밝혔으나 결국 성사되지는 않았다.
교황은 가톨릭의 아시아 포교와 관련한 한국의 역할에도 큰 기대를 가졌다. 중국이 종교 개방을 하면 한국이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지난해 봄 출간된 회고록에서도 교황은 "필리핀 교회와 함께 한국 교회의 역동성에 큰 희망을 걸고 있다"고 썼다.
한국 천주교의 주교는 30명이며 이 가운데 20명이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임명됐다. 1986년 주교가 된 강우일 제주교구장이 처음이고, 2003년 주교가 된 유흥식 대전교구장이 마지막이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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