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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수학, 제대로 가르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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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수학, 제대로 가르쳐야

입력
2005.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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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중·고교에 다니던 1970년대 시절은 영어 수학만 잘하면 되던 때였다. 학교 시험에서 영어와 수학의 변별력이 가장 높았다. 영어 수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서는 성적이 잘 나오지도 않았고 원하는 대학에 가기도 어려웠다. 좋든 싫든 다들 영어와 수학에 매달렸다.

요즘 학생은 영어와 수학에 더 많은 사교육비와 시간을 투자한다. 금전적·시간적 투자에 걸맞게 영어실력은 향상됐다. 문제는 수학이다. 서울대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내신 수학 석차는 1등부터 100등까지 다양하다. 다 맞으면 공동 1등이고 한 문제만 틀려도 100등으로 추락하기 때문이다. 어느새 반복과 암기가 수학 공부의 핵심이 되어 가고 있다. 실수 덜 하려고 수학 공부에 매달린다. 실수가 두려워 학생들은 모험을 하려 들지 않는다. 모험을 하지 않으니 대학과 사회는 역동성을 잃는다. 가진 거라고는 인적자원밖에 없는 나라의 엘리트들이 젊어서부터 무사안일만을 추구한다. 쉬운 과목 골라 듣고 학점 안 나온 과목은 재수강한다. 다들 변호사, 의사, 공무원만 되려 한다.

최근의 사회 경제적 변화는 수학적 사고능력 특히 고등수학에 대한 수요를 획기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 금융권에서 파생금융상품의 가격을 정해 계약을 맺으려면 수학적 지식이 필수적이다. 수학을 모르면 계약 조건을 제시하기는커녕 상대방 제안이 유리한지 불리한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 산업이 단순조립에서 첨단산업으로, 육체노동에서 정신노동으로 무게중심을 옮겨 감에 따라 수학적 사고능력은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며칠 전 경제학부의 한 동료교수로부터 ‘경제학 원론’ 과목에서 미분의 기본개념을 가르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인문계 고교에서 미분이 선택과목이 되어 많은 학생들이 기피한다. 서울대 경제학부 2학년 다수가 미분을 모르고 있다. 과거 몇십 년간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던 수학의 기본개념을 이제는 대학에서 가르치게 되었다.

미국에서도 미적분은 고교 과정 필수과목이 아니다. 듣고 싶으면 듣고 싫으면 안 들어도 그만이다. 대학은 학생 선발권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 전공에 따라 수학적 배경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고등수학을 이수한 학생을 골라 선발할 수 있다. 나아가 미국의 엘리트 학생들은 고교 시절에 대학 수학을, 대학시절에 대학원 수학을 공부한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우리 대학은 학생 선발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본고사는 폐지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고등수학을 선택하려는 학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사서 고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의무적으로 미적분을 배울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배우지 않는 것은 문제이다. 우리는 미국의 제도를 복사하면서 부분적으로 한 면만 복사한 셈이다. 무지인가 고의인가.

세계적 고등교육의 장에서 한국 학생이 수학 하나로 버티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수학마저 절단나고 있다. 학문 영역에서마저도 문 걸어 잠그고 우리끼리 살 것인가. ‘한국적 수학’을 가르칠 것인가. 수학은 우리의 유일한 방패다. 우리의 교육 현실을 방치하면 국가의 장래가 위험에 빠진다. 수학과목 평균 점수가 높다고 우리가 수학에서 세계 상위권이라고 자위할 때가 아니다. 수학에서 의미있는 국제 경쟁력은 수학 엘리트에 의해 결정되지 평범한 학생들의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교육비를 줄이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사교육비 지출의 효과를 높이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수정하자. 쉬운 문제 안 틀리기 경쟁에 돈을 쓰게 하지 말자. 사고하는 능력을 제대로 갖추는데 쓰이도록 하자. 중국, 미국, 프랑스, 동남아 어느 나라도 엘리트를 바보로 만드는 교육은 시키지 않는다. 교육 정책은 더 이상 평등과 안이함만을 좇지 말아야 한다. 시대착오적 교육정책은 망국의 지름길이다.

류근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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