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의 4·2 전당대회를 통해 등장한 문희상 의장 체제는 참여정부의 집권 중반기 국정기조와 맞물려 중도실용노선을 택할 것으로 전망된다.장영달ㆍ유시민 상중위원 등 범개혁파 인사들의 진출에도 불구하고 당의 실용노선이 대세로 자리잡았다.
1월 온건실용파인 정세균 원내대표 취임에 이어 이번에 문 의장이 얻은 43%의 지지, 러닝메이트나 다름없었던 염동연 상중위원의 2위 진출 등이 이를 말해준다.
문 의장의 2기 체제는 탄핵, 총선, 행정수도 위헌결정, 국보법 파동 등의 거센 외풍에 휘말렸던 정동영·신기남·이부영·임채정 전 의장의 1기 체제에 비해 여건은 좋아 보인다.
여야관계만 해도 지난해말 국회파행처럼 극단적인 대결요인은 많이 줄었다. 4월 국회, 4·30 재보선 결과에 영향을 받겠지만 문 의장과 정 원내대표 모두 대화와 타협을 중시한다. 특히 여야간 첨예한 현안인 국보법에 대해 문 의장은 "여야가 대체입법으로 합의한다면 반대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폐지당론을 철회했다.
청와대, 정부와의 교감도 훨씬 긴밀해질 것으로 보인다. 문 의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첫 비서실장을 지내 청와대와 정부에 인맥이 넓게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당내문제로 고개를 돌리면 상황이 자못 심각하다. 전대를 거치면서 계파간 갈등의 골이 더 깊어졌다. 그 이면에는 정동영 통일장관과 김근태 복지장관 등의 대권경쟁이 자리잡고 있다. "당내 갈등이 문 의장의 최대 과제"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도부만 해도 실용진영이 주도권을 잡았지만 범개혁파의 장영달 유시민 상중위원이 다른 목소리를 낼 공산이 크다.
게다가 전대를 거치며 노선 대결이 ‘친유·반유 충돌’, 유 상중위원과 386의 갈등 등으로 분화하며 훨씬 복잡해졌다. 당내 갈등은 노사모, 국참연, 중개련 등 당 외곽조직의 대결로까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차기 대권 등 권력지도와 맞물린 갈등이라 문 의장의 노력만으로도 풀기가 쉽지않다.
그 중에서도 유 상중위원은 뜨거운 감자다. ‘유빠(유시민 지지파)’를 앞세운 그의 과격한 당원중심 정당론은 원론적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현역의원 중심으로 당을 이끌려는 문 의장의 현실론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문 의장 체제의 순항여부는 당내 갈등을 어떻게 추스르고 묶어내느냐에 달려있다. 일정만 본다면 가깝게는 4월과 10월의 재보선, 멀게는 내년 6월 지방선거가 고비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
■ 의장경선 표 분석/ 2위예상 김두관 낙마 이변
열린우리당 2일 전당대회 결과는 실용파 약진, 재야파 선전, 개혁당파 부진으로 압축된다. 여론조사에서 줄곧 2위를 달리던 김두관 전 장관이 예상 밖으로 탈락한 것도 이변이다. 김 전 장관이 유시민 의원의 ‘반 정동영’ 발언의 유탄을 맞았다는 분석이다.
문희상 의장은 일찌감치 예상됐다. 대통령의 복심이고 통합형 리더로서 그만한 적임자가 없다는 게 대세였기 때문이다. 당내 최대 지분을 가진 정동영 장관의 구당권파가 지원한 것도 큰 몫을 했다.
염동연 의원이 2위를 차지한 것은 호남 지역기반에다 여전히 다수인 민주당 출신 대의원들의 지지, 구당권파의 지원 결과다. 연청 사무총장 출신으로 합당론을 내건 것도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정동영 장관의 외곽세력으로 알려진 국민참여연대(국참)의 막판 지지선언도 큰 힘이 됐다. 국참은 청년대표 중앙위원 선거에서 이상호씨를 청년위원장, 24세인 윤혜안씨를 3위로 당선시켰다.
장영달 의원이 3위를 한 것은 재야파의 결집 결과다. 재야파는 이번 선거가 정 장관과 김근태 장관의 대리전 성격을 띠게 되자 장 의원이 탈락해선 안 된다는 위기감으로 뭉쳤다. 의원 20여명이 지역구에 상주하며 득표활동을 했다. 개혁지도부 구성 논리의 최대 수혜자도 장 의원이다. 김두관 전 장관의 경남 표 일부를 흡수했고 수도권에서는 유시민 의원과의 부분 연대도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개혁당파는 유 의원만 상임중앙위원에 턱걸이했다. ‘반 정동영’ 발언이후 급격한 역풍을 맞아 탈락 위기에 놓였다가 간신히 회생했다. 그가 살아남은 이유는 ‘유빠’로 불리는 지지층의 공고함 때문이다. "꼴찌를 해도, 왕따를 당해도…"라는 선동적인 유세 덕도 봤다. 5위인 김 전 장관과의 151표 차이는 현장에서 뒤집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대 이변은 김 전 장관의 낙마. 시종 2위를 달리던 김 전 장관은 ‘유시민 역풍’에 희생됐다는 분석이 많다. 수도권에서 유 의원의 2번 표가 장 의원 쪽으로 상당부분 빠져나간 것이다. 상대적으로 위험해보였던 유·장 의원 쪽으로 개혁파, 재야파 표가 방향을 틀었다는 후문이다. 김 전 장관측은 "표를 얻겠다는 유 의원의 욕심에 배신 당했다"고 말했다. 이런 속사정 때문에 개혁당파 내부의 분열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체적으로 실용진영의 승리였지만 개혁진영과의 득표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문희상·염동연·송영길·한명숙 후보가 1만 131표, 장영달·유시민·김두관·김원웅 후보가 9,693표를 얻었다. 균형과 견제의 절묘한 표심이다.
조경호기자 sooyang@hk.co.kr
■ 한 "盧心 전달자 안되길"/ "실용적인 분…여야관계 기대"
한나라당은 3일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의 당선을 환영면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복심이 아닌 정부권력에 대해 독립적인 책임다수당의 대표임을 잊지 말라"고 주문했다.
김무성 사무총장은 "권력자의 독선이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는 건 동지적 관계에 있는 가까운 사람 뿐인데, 노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문 의장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맹형규 정책위의장은 "실용적이면서 전략적인 문 의장의 당선으로 이념에 휘둘려 온 여야 관계가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문 의장이 김 사무총장과는 민주화추진협의회에서 함께 활동했고, 맹 의장과는 경복고 동문으로 돈독한 사이여서 막혔던 여야간 물밑 접촉채널 복원도 기대하고 있다. 또 권영세 전략기획위원장은 "문 의장은 합리적인 분이지만, 복잡한 여당 내 사정이 조정되지 않을 경우 문 의장 한 명의 노력만으로 여야 관계가 개선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여옥 대변인은 논평에서 "문 의장은 ‘노심(盧心)’의 전달자가 아닌 ‘문심(文心)’을 지닌 정치인으로서 참여정부의 성공이 아닌 국민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던져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문 의장은 ‘그때 그 의장’으로 단기간에 소모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 문희상 의장 회견/ "국민의 속 확 풀어주는 해장국같은 정치할것"
열린우리당 문희상 신임의장은 3일 취임 첫날부터 민생 현장을 방문하며 ‘해장국 정치’를 선보였다.
문 의장은 이날 아침 서울 종로소방서를 방문, "첫 일정으로 이곳을 찾은 것은 민생정치, 생활정치를 하겠다는 약속을 실천하는 것"이라며 "정치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어려움을 달래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소방공무원들과 인근 음식점에서 해장국을 함께 하면서 "해장국처럼 국민의 속을 확 풀어주는 정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문 의장은 4일에도 영등포 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해장국을 함께 하며 여론을 들을 예정이다.
문 의장은 이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분향소가 마련된 명동성당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교황의 뜻처럼 저도 현장에서 국민의 소리를 듣고 불편함을 해소하는 데 매진하고자 한다"고 다짐했다.
이에 앞서 문 의장은 2일 당선 직후 기자회견에서 "4월 임시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하면 국보법의 대체입법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문 의장은 또 "개헌논의를 지금 하면 민생과 경제 등 시급한 과제가 뒤로 밀린다"며 "내년 지방선거 이후 논의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문 의장은 이어 민주당과의 합당에 대해 "단시일 내에 이루어지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4·30 재·보선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