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청 스케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추모하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려는 신자들이 바티칸으로 모여들고 있다. 성베드로 광장의 인파는 교황의 서거 발표가 있은 뒤 도리어 불어나 10여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시신이 안장되는 6일부터 장례특별미사가 열리는 10일 사이에는 200만명의 조문객이 모여들 것으로 보고 대책마련에 들어갔다.
교황청은 3일부터 차분하고 빈틈없이 조문·장례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바티칸 TV는 이날 낮부터 교황청 클레멘타인 홀에서 바티칸 사제들과 외교사절단 등이 교황의 시신과 대면하는 위령기도회를 사상 처음 TV로 생중계했다.
바티칸 TV에 의해 공개된 교황은 자주빛 제의를 입은 채 하얀색 관을 쓰고 편안한 자세로 누워 있었고, 두 명의 스위스 호위병이 시신을 지키고 있다. 교황청은 4일부터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시신을 옮겨 일반 신자들의 조문을 받는다.
이에 앞서 오전 10시 30분에는 교황청 앞 성 베드로 광장에서는 교황청 국무장관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이 집전하는 추모 미사가 열렸다. 소다노 추기경은 강론에서 "요한 바오로 2세가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삶과 역사의 구세주이신 그리스도 곁에 오르셨음을 굳게 믿는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사랑하는 교황’을 외치며 기도를 올렸고 존경하는 이들이 죽었을 때 손뼉을 치는 이탈리아 전통에 따라 몇 차례 손뼉을 치며 교황의 선종을 애도했다. 미사 후에는 레오나르도 산도리 대주교가 일요 정오 기도를 대신 전했다.
이에 앞서 2일 밤 성 베드로 광장에서는 교황의 선종을 알리는 조종이 울렸다. 순간 광장을 지키던 7만여명의 신자는 일제히 침묵에 빠져들었다. 교황청의 한 사제는 "우리는 오늘 밤 고아가 됐다"고 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바티칸 외신=종합
■ 전세계 추모 물결/ 교황 모국 폴란드‘눈물 바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을 들은 세계 각국에는 애도의 눈물과 기도가 가득했다.
세계 주요 지도자들은 교황의 업적을 찬양했고 11억 신자들은 추도미사에 모였다.
교황의 모국인 폴란드는 눈물 바다였다. 모든 교회에서 조종이 울리고 교황의 고향인 바도비체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꿇어앉아 기도했다. 수도 바르샤바의 성 안나 교회에는 꽃다발과 촛불을 든 신자들이 운집했고 대통령궁에 조기가 내걸리고 6일까지 국가 애도기간이 선포됐다.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은 "교황이 없었다면 공산주의 종식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교회는 2일 밤 교황의 나이에 맞춰 84회의 조종을 울렸다. 미국 뉴욕의 성 페트릭 교회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주요 교회도 교황을 위한 특별 추도미사를 집전했다.
교황청과 불편한 관계였던 러시아 정교회도 성명을 내고 "고인의 기억은 우리 두 교회의 상호 우호관계를 구축하고 현재의 난제들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세계 가톨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는 중남미 대륙에도 추도의 물결은 이어졌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3일간의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은 "브라질은 세계 최대의 가톨릭 신자를 가진 나라"라며 "브라질인이 차기 교황으로 선출되는 것이 좋다"고 중남미의 기대를 대변하기도 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도 전국이 슬픔에 잠겼다. 1998년 교황이 방문했던 쿠바 정부도 공식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교황청과의 관계를 단절한 중국 정부는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선종 소식만 간단히 보도하고 있다가 3일 오후 늦게 조전을 보냈다.
세계 주요 지도자들의 애도성명도 줄을 이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등은 교황을 "인간 자유와 평화의 옹호자였다"고 찬사를 보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 등 다른 종교 지도자들도 종교간 화해를 위해 노력한 교황을 기리며 추도에 동참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는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 "2000년 교황 訪北 추진 성사직전 무산 안타까워"
김대중 전 대통령은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선종을 애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품 안에 영생의 복락을 누리시기를 기도한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특히 교황이 생전에 북한 방문을 추진했으나 성사 일보직전에 북한과의 의견절충에 실패해 뜻을 이루지 못한 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가톨릭 신자인 김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직전인 2000년 3월 초 로마 교황청을 방문, "한반도와 국제 평화를 위한 축복이 될 것"이라며 교황의 방북을 적극 요청했다.
이에 교황은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는 특별 메시지를 발표한 데 이어 대주교를 평양에 파견하고 수십만달러를 북한에 지원하는 등 대북 지원에 열성을 보였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도 정상회담 때 김 전 대통령에게 "오시라고 하라"며 교황의 방북을 수락했다.
북한은 특히 교황청과의 관계 개선을 유럽정책의 교두보로 판단, 2000년 초 서방 선진7개국(G7) 가운데 처음으로 이탈리아와 수교하는 등 교황청과의 거리를 좁혀 갔다.
하지만 교황청과 북측의 의견조율 과정에서 교황청이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북한의 가톨릭교회 인정, 가톨릭 신부의 입북 허용 등에 대해 북측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교황 방북은 무기한 연기됐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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