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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에서] 외교가 정말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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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에서] 외교가 정말 어지럽다

입력
2005.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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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밤 택시를 탔을 때 마침 라디오방송에서 한일외교 마찰 뉴스가 나왔다. 젊은 운전기사가 분통을 터뜨렸다. "일본과 전쟁 한판 붙었으면 좋겠네요. 독도에 북한이 미사일 기지 만들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신문사 바로 옆에 일본 대사관이 있어 반일 데모를 보는 것이 일상사이긴 하나, 반일감정 분출의 수위와 에너지가 예사롭게만 보이지 않는다. 욘사마 열풍, 월드컵 공동개최, ‘한일 우정의 해’ 같은 일들을 하루아침에 무색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자리잡은 반일 정서다.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작년 10월 28%까지 내려앉았던 지지도가 48%로 껑충 뛰었다. 청와대는 이런 추세를 독도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강경대응에 힘입은 것임을 숨기지 않는다. 실제로 일본과의 외교전쟁까지 언급한 3·23 대일 선언을 놓고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 72%가 ‘잘하고 있다’고 지지를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요즘 시국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빠른 배가 격랑에 부딪치는 것과 같다. 마치 작년 비슷한 시기에 대통령 탄핵 소동이 벌어졌을 때를 연상케 한다. 그때는 국내정치가 문제였고, 지금은 독도문제 등 한일긴장이 이슈다. 이 격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대통령이 있다. 대통령은 지금까지 국내정치에서 보여줬던 것과 비슷하게 대일관계에서도 대결구도로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인기는 올라가고 있다.

논설위원실에서 이 한일갈등의 전개과정을 바라보면서 솔직히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이렇게 격변하는 시기에 한일갈등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지 또 신문의 올바른 역할은 무엇인지 판단을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일본 고위층의 주장이나 망언이 나올 때마다 신문은 야단치고 정부에 강력한 대책을 요구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물론 조용한 외교를 지향하는 정부는 논쟁이 커지는 것을 자제하는 쪽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대통령이 앞장서서 저만치 나가고 있고 신문이 냉정을 요구하는 편이니 정부와 신문이 위치가 뒤바뀐 셈이다.

한일 외교갈등에 더불어 우리의 혼란을 가중시킨 것은 대통령이 제창하고 나선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이다. 한미 및 한일 동맹을 축으로 한 동북아의 정치 지형에 대한 변화를 말하는 것 자체가 대내외에 민감한 파장을 불러올 이슈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노무현 정부의 대미관계를 떠올리게 하고 기존의 한미동맹 체제를 버리려는 것으로 비치면서 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는 사회적 불안을 의식한 듯 강력한 한미동맹을 토대로 동북아 평화를 위한 균형자 역할이라고 개념을 정리했지만 이에 부응하여 국민의 마음이 아직 정리된 것은 아니다. 그런 혼란의 근저에는 한중이 한편이 되고 미일이 또 다른 한편이 되어 서로 적대적 세력구도를 형성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외교실무의 전문가들은 이 구도를 최악으로 보고 있다.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증대하면서 동북아 역학구도는 본질적 변화를 겪고 있다. 유럽의 통합적 변화와는 다르게 동북아에서는 국가주의 또는 민족주의가 오히려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은 지역패권을 추구하거나 그 경험을 가진 나라들이다.

지도자라면 어느 누구든 이 변화와 지정학적 위상을 놓고 나라의 장래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기존체제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외교정책의 변화를 국내정치에서와 같은 차원에서 던져 놓고 국론을 분열할 정도의 논쟁을 유발하고 또 수정하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동북아 질서가 바뀔 것이라는 대통령의 지적은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변화의 선택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가 더 중요한 문제이다.

김수종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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