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전세계 사람들이 ‘다빈치 코드’를 다 읽도록 그냥 두는 게 아니냐고 교황청을 비난한다. 내가 비난에 동참하려는 것은 아니다. 막 부활절이 지났고 종교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경건하게 대하고 싶다.
교황청이 좀 늦은 것으로 보인다. 2002년 댄 브라운이 쓴 이 소설은 전세계 44개국에서 2,500만부가 팔리는 ‘출판 기적’을 이뤘고 브라운의 다른 책들도 덩달아 인기를 얻어 판매부수가 뛰어올랐다.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은 영화도 올 봄에 촬영이 시작된다. 이런 상황에 이르러서야 교황청은 "‘다빈치 코드’를 사지도 읽지도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의 역사를 돌아보면 ‘다빈치 코드’에 대한 교황청의 대응은 ‘번개 같은’ 속도로 이뤄진 것이다. 교회가 갈릴레오에 대한 비난을 철회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350년이다. 요한 바오로 2세에 와서야 십자군이 저질렀던 범죄를 사죄했고 홀로코스트에 대해 침묵했던 것을 회개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주교들은 지난 주에야 사형제도 폐지를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다빈치 코드’가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독자들이 책의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일지 모른다는 것"이라는 게 교계의 설명이다. 가톨릭의 뒤숭숭한 분위기에 대해 좀더 객관적인 분석도 나온다. "교회는, 어떤 사람은 믿고 어떤 사람은 믿지 않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세워졌다. 그래서 교황청은 그 이야기에 대한 다른 설명이 나오면 위기의식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는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고 자녀를 두었다는 가정에서 나왔다. 제노바 교구의 대주교인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은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런 거짓말을 믿는다는 게 놀랍고 걱정스럽다"고 말한다.
틈틈이 기적을 행하는 젊은 유대인 목수와 그를 따르는 여성 간에 사랑의 불꽃이 튄다는 것, 이런 발상을 한 게 댄 브라운이 처음은 아니다. 많은 역사가와 소설가들이 ‘다빈치 코드’와 비슷한 얘기를 만들어냈다. 막달라 마리아를 영향력 있는 사도가 아니라 성욕이 빚은 죄악에 대한 은유 대상으로 깎아내린 것이다. 교회는 여성이 예수의 열두 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여성을 사제 서품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가 아니라 성녀라면, 교회는 지금까지 여성을 지배하고 배제해왔던 데 대한 합리화의 근거를 잃게 되는 것이다.
교황청 관계자들은 ‘다빈치 코드’를 끝까지 읽지 않은 게 분명하다. 그랬다면 소설 내용을 그토록 비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아직 ‘다빈치 코드’를 읽지 않았다면 더 이상 이 칼럼을 보지 마시오). 작가는 가톨릭 교회가 오랫동안 독신 남성 중심의 조직으로 유지돼온 데 대해 독자로 하여금 분노하도록 이끌다가 갑자기 황당한 결말을 낸다. 여성은 침묵하고 복종하며 남성이 계속해서 교회를 이끌어간다는 게 결론이다.
소설에서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자손으로 나오는 소피는 주인공 로버트 랭던 하버드대 교수에게 얘기를 들려준다. 교회가 막달라 마리아를 창부로 몰았고 여성이 중요한 역할을 맡지 못하도록 내몰았으며, 앞으로도 관습은 계속되리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살짝 덧붙여지는 게 있다. 막달라 마리아에 관해 그리고 여성 전체의 통념에 관해 변화의 기미가 포착되고 있다는 것이다. 본격적인 논란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댄 브라운은 어쩌면 교계의 교란자가 아니라 동맹군일지도 모른다.
모린 다우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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