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인간인 미국인 테리 시아보(41)가 남편의 요구로 영양공급을 중단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안락사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7명이 소극적 안락사에 찬성하고, 절반 이상이 적극적 안락사에까지 동의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이인영(사진) 한림대 법학부 교수는 전국 16개 시·도에서 전체 인구 비율에 따라 표본추출한 1,020명을 대상으로 ‘고통이 극심한 불치병 환자가 죽을 권리를 요구할 때 의료진은 치료를 중단해야 하나’라고 물은 결과, 707명(69.3%)이 이에 동의했다고 1일 밝혔다. ‘치료중단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람은 281명(27.5%)에 그쳤다.
소극적 안락사란 의학적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나 그 대리인이 생명유지 치료를 비롯한 진료의 중단이나 퇴원을 요구해 의사가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형법상 자살방조죄와 의료법상 진료거부에 해당, 금지돼 있으나 대한의사협회가 2001년 마련한 의사윤리지침에서는 소극적 안락사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이를 대부분 허용하고 있다.
또 의사가 환자의 호소를 받아들여 약물이나 의료기구로 환자를 죽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에 대해서도 573명(56.2%)이 찬성했다. 반면 이에 대한 반대는 399명(39.1%)에 그쳤다. 적극적 안락사는 현행법과 의협 윤리지침에서 모두 금지되고 있다.
이 교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국민의 여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다만 적극적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이 절반을 약간 웃도는 것으로 나왔다고 해서 ‘적극적 안락사를 도입해야 한다’고 단정지어 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안락사 허용 여부 논의와 더불어 미리 자신의 생명 연장에 대한 의사를 밝혀 놓는 사전유언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영윤기자 daln6p@hk.co.kr
◆ 찬 - "회복 불가능 환자의 결정권 존중해야"
2001년 사실상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내용의 의사윤리지침으로 논란을 빚은 대한의사협회는 "안락사는 죽음을 선택하는 권리인 반면, 회복 불가능한 환자의 치료 중단은 치료받지 않을 권리에 관한 것"이라며 "환자가 치료받지 않을 권리를 행사할 경우 의사는 그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의협은 적극적 안락사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유효종 전 연세대 의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안락사는 환자의 결정권보다는 가족이나 주변인의 의사를 중심으로 결정되는 것이 문제였다"며 "이같이 보호자들의 의견이 충돌할 때를 예외로 할 경우 안락사는 허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규원 한양대 법대 교수는 "소극적 안락사는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이고, 의미 없는 치료는 치료를 계속하면 생명은 유지할 수 있으나 의식 있는 정상으로 돌아올 수 없는 것을 말하므로 둘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 반 - "환자 의사에 반하는 죽음 초래할 수도"
안락사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안락사 합법화 시 가족 등 주변의 이해관계에 의해 당사자인 환자의 의사에 반하는 죽음이 초래될 우려가 있으며, 사실상 담당 의사에게 한 인간의 생사 결정을 맡기는 것도 불합리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극규 모현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진료원장은 "의사나 가족에 따라 해석이 다양할 수 있어 충분히 살아 있어도 되는 사람들이 자기 의사와 달리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박상은 안양병원장도 "대다수의 국민들이 소극적 안락사에 찬성하더라도 이 문제는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생명은 인간이 누리는 것일 뿐 그 박탈권은 인간에게 없다"고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가톨릭대 안성희 간호대 교수도 "안락사 문제는 의사 한사람의 결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법이 있어야 하며, 또 법 이전에 윤리적 검토와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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