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보기관이 이라크 전쟁 이전 보유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정보 거의 대부분은 완전히 틀린 것이었고, 북한, 이란 등이 갖고 있는 핵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정보가 없다고 미 대통령 직속 ‘WMD에 관한 미 정보능력평가위원회’가 31일 밝혔다.
지난해 초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지명으로 미 정보당국의 이라크 전 정보 오류 등을 독립적으로 조사해온 위원회는 이날 전체 692쪽 분량의 평가 보고서를 통해 "이라크에서의 정보 실패로 인해 실추된 미국의 신뢰도를 회복하려면 몇 년이 걸릴 것"이라며 부시 대통령에게 비확산센터 설치 등 정보 체계의 근본적 개혁을 위한 74가지 사항을 권고했다.
위원회는 북한과 이란의 핵 개발 정보 평가를 담은 100쪽 분량은 비밀로 분류, 공개하지 않은 채 "정보 당국은 세계의 가장 위험한 행위자들의 핵 무기 프로그램에 대해 혼란스러울 정도로 아는 게 없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미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 국가정보국(NSA) 등 정보기관의 이라크 정보 오류를 강도 높게 비판했지만 그 오류는 정보의 부족 때문이지 치밀한 왜곡이나 외부 압력의 결과가 아니라고 밝혔다. 그 정보가 얼마나 불충분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정책 입안자들에게 보고되지 않았다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부시 정부가 이라크를 공격하기 위해 WMD 정보를 왜곡했다는 비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셈이다. 이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주요한 결론은 내 생각과 같다"며 "그것은 미 정보기관의 근본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을 기획했던 부시 정부 내 관리들이 책임론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뉴욕 타임스는 부시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이 이라크를 공격하기 위해 그들이 꼭 필요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원하는 것을 얻었다는 점을 보고서가 보여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국방부의 도널드 럼스펠드 장관과 폴 월포위츠 부장관(세계은행 총재 피선), 콘돌리사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현 국무장관) 조지 테닛 CIA 국장(퇴임)이 잘못된 가정에 대한 책임을 졌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이 신문은 내다봤다.
북한과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미 정보기관의 정보 결핍이 확인된 것도 부시 정부의 향후 정책 추진에 부담이 될 전망이다. 이날 보고서 발표 후 열린 백악관과 국무부 브리핑에서 "미국이 이라크의 경우 무기 관련 자재를 구입했다는 이유로 무기 생산 능력을 갖췄다는 식으로 해석했었는데 북한과 이란 관련 정보도 이런 패턴을 따르느냐"는 질문 등이 이어진 데서도 짐작되듯 보고서의 결론은 미국의 북한과 이란 핵 능력에 대한 정보의 질과 판단에 근본적인 회의를 제기하고 있다.
보고서는 북한과 이란 등을 지칭한 듯 "최우선 정보 목표 다수에 관해 결정적으로 중요한 정보에 대해선 우리가 제한된 역량만 있음을 확인했다"고 인정했다.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 정보만 있는 게 아니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같은 데서 나오는 정보도 많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궁색한 답변이었다.
이에 대해 존 케리(민주) 상원의원은 "이것은 잠을 깨라는 경고 이상"이라며 "이란과 북한의 위협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적대국 무기 프로그램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위원회의 결론을 대단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