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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유사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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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유사현실

입력
2005.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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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0월29일 미국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는 77세의 상원의원 존 글렌을 싣고 발사됐다. 글렌은 62년 당시 우주개발 경쟁에서 지구 최초의 우주인을 소련 유리 가가린에 빼앗긴 이후 실망하던 미국에 자존심을 회복시켜 준 첫 미국 우주인. 한국전에도 참전했던 해병대 중령 글렌은 일약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고, 이 기세로 상원에 진출해 4선째였다. 디스커버리 승무원으로 글렌의 임무는 ‘우주비행과 노화’ 실험이었다.

■ 항공우주국(NASA)은 고령을 이유로 글렌 의원의 디스커버리 승선을 망설였다고 한다. 그러다 그의 건강상태가 30살 정도로 젊다고 해 36년 만의 우주행을 받아들였고, 미국은 그의 노익장을 격찬하며 열광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각광을 받으며 존재 확인이라는 최대의 실리를 챙긴 쪽은 바로 NASA였다. 냉전 종식 이후 우주경쟁의 대상이 없어지면서 존재 가치와 중요도가 약화하자 예산지원을 계속 확보하기 위한 대국민 연출이었다는 것이다.

■ 바로 pseudo event라는 연출이다. 상황과 효과에 따라 유사(類似)사건, 또는 유사현실로 불리는 일종의 이미지 전략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대니얼 부어스틴은 대중에게 전달되는 현상들이 자연스러운 사실보다는 조작되고 창조된 유사현실을 반영하는 이미지라고 설명, 60년대 사회과학의 관심을 일으켰었다. 유사현실이 만드는 이미지는 목적을 위해 인공적으로 합성되고,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적응하고 믿는다. 그 이미지는 또 생생하고 구체적이자, 기대와 현실 사이의 중간에 위치하는 특징을 갖는다.

유사현실은 그러나 윤리성을 벗어나지 않으며 사실을 근거로 한다는 점에서 계획, 조직적 조작과 통제, 변용을 기도하는 프로파간다와 구별된다.

■ 엊그제 국민적 논란 속에 결국 숨을 거둔 미국 플로리다의 식물인간 테리 시아보의 경우도 일종의 유사현실이다. 부시 대통령과 의회가 그녀의 생명 연장을 위한 특별법까지 제정하며 벌인 소동은 보수 정치권과 기독교 우파의 보수화 강화를 위한 정략이었다는 분석이다. 생명의 상징화를 걸었지만 여론은 가족과 개인사에 개입한 정략성을 간파했고, 부시의 지지율은 2001년 취임 후 최악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신 한일관계 선언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여당 자체조사에서 48%에 이르는 지지도를 보인다는데, 여기에 유사현실론을 대입해 보면 어떨까.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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