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문유관(四門遊觀)은 싯다르타가 고향 카필라성의 동서남북 네 문 밖에서 벌어진 광경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는 이야기다. 그는 백발에 허리가 굽은 노인, 병자, 상여 행렬을 보고 노(老) 병(病) 사(死)가 인생의 본질적인 고통이라는 것을 깨닫고 출가 사문에게서 이를 해결할 길을 발견한다. 태어난 것부터가 고통이라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찬성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생이 고통의 연속이라는 데에는 누구라도 동의할 것이다.
미국의 신경외과 전문의인 프랭크 버토식 주니어의 의학에세이 ‘사로 잡힌 몸-통증의 자연사’는 만성질병을 중심으로 생물학적인 통증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어떻게 하면 그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사례와 함께 드라마틱하게 설명한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일시적인 통증이 아니라 출산, 암에 동반되는 고통이나 편두통 대상포진후신경통 삼차신경통 당뇨병신경병증 류머티즘관절염 환상통 등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극심한 통증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저자에 따르면 의학은 통증을 경감하는 약제를 생산하는 면에서 급격하게 진보했으며 두통 치료를 위해 비강 스프레이를 쓰고, 암으로 인한 통증을 경감하기 위해 모르핀을 신경계로 직접 투여하는 등 정확한 약물 전달 기법을 널리 쓰게 됐다. 뇌와 척수의 통증중추를 정밀 레이저나 디지털을 이용한 방사선 치료로 파괴할 수도 있다. ‘영원히 살기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고통에서 벗어난 삶을 바랄 수는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1급 논픽션 작가 뺨치는 뛰어난 글솜씨로 작성한, 고통에 관한 한 권의 훌륭한 보고서다. 사지의 일부가 없어졌지만 거기서 계속 통증을 느끼는 환상통이 생겨나는 원인을 설명하는 대목은 이렇다. ‘뇌는 대기업의 최고경영자와 같다. 통증 정보가 곧바로 뇌로 전달될 수 없는 것은 회사의 말단 직원이 회장에게 직접 결제 받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똑똑한 중간관리자는 담당 부서가 전혀 바쁘지 않을 때도 열심히 보고서를 제출해 무언가 중요한 일이 진행되는 듯 보이게 한다. 통증 감각을 받아들이는 척수의 통각수용 뉴런에 처리할 감각이 들어오지 않으면 일부러 가짜 신호를 뇌의 통증중추에 올려 보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이 뉴런들의 활동이 극단적으로 되어 오직 지속적인 통증만 느끼게 된다.’ 몸이 불타는 듯하다는 환상통의 발생 메커니즘을 모르고 불과 20세기 초까지도 고통을 줄이려고 신경 절단 수술을 해 오히려 이 ‘유령 통증’을 자초했다고 한다.
‘육체의 굴레가 영혼을 짓누르게 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저자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통증의 메커니즘을 아는 것은 물론, 좀더 긍정적인 태도로 주변의 도움을 구해가며 거기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역시 미국의 신경학 의사이며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각성’(Awakening)을 쓴 논픽션 작가 올리버 색스의 책보다 한 수 위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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