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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3회 등반 김미순-지동암씨/ "생활 빠듯해도 마음 넉넉한게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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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3회 등반 김미순-지동암씨/ "생활 빠듯해도 마음 넉넉한게 최고"

입력
2005.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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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없이 잇몸으로 살아가는 행복’.

혹 기억하시는 독자가 계실지 모르겠다. 1998년 한국일보 여성생활수기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 제목이다. 그런 자세로 사는 게 몸에 밴 중년 부부의 ‘무소유의 삶’을 수채화처럼 예쁘게 그린 수기였다. 주인공은 서울 불광동 북한산 끝자락에서 4.5평짜리 카페 ‘마운틴’을 운영하던 김미순(47)-지동암(53)씨 부부. 주말이면 북한산 수리봉에 올라 별을 세다 잠이 들고, 손바닥만한 카페 벽에 세계전도를 붙여놓고 날마다 히말라야를 꿈꾸던 부부. 두 사람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1일 근 7년 만에 다시 만난 부부는 이미 소박한 꿈 하나를 이루었다. 히말라야에 다녀온 것이다. 그것도 벌써 세 번씩이나. 2001년 안나푸르나, 2003년 다올라기리에 이어 올 1~2월엔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세 번 다 정상이 아니라 베이스 캠프까지만 가는 트레킹 코스였지만 부부는 어느새 전문 산악인이 다 됐다. 벌이는 여전히 신통치 않지만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비행기 삯만 모으면 네팔로 떠날 작정이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계속될 성지순례가 될 것"이라고 한다.

"히말라야에선 빨리 걷다간 숨이 가빠 죽어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거대한 자연 앞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인간적 한계에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도리어 그곳의 삶은 자유로워요. 도시인들이 한계를 넘으려다 스트레스를 받는 것과 반대입니다. 제 오만한 심성을 정화하기 위해서라도 계속 갈 수밖에요…." 예수회 수사(修士) 출신인 남편 지씨는 지금도 쿰무 빙하의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귓전에 울리는 듯 상기된 목소리로 체험을 전한다.

불광동 일대 아파트 재개발로 정든 집이자 일터이며 전 재산인 카페 건물이 헐리게 된 것도 부부에겐 큰 변화다. 지난해 전세보증금 800만 원만 들고 거리로 나앉게 될 신세였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카페 ‘마운틴’은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친구들이 길 건너 녹번동에 스무 평 남짓한 땅을 사서 예쁜 카페를 한 채 지어준 덕분이다. 컨테이너와 비닐하우스를 리모델링해 꾸민 카페는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도 출품됐을 정도로 독특한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이사를 하면서 남편은 10평 남짓한 카페 안에 한 사람 겨우 들어갈 만한 독립 화장실을 갖게 된 것, 그리고 아내는 반 평짜리 텃밭에 튤립이며 감국을 키우게 된 것이 무엇보다 큰 기쁨이자 행복이다.

북한산이 바라보이는 컨테이너 위에는 언제든 부부가 어깨를 맞대고 누울 텐트를 설치해 침실로 쓸 수 있어 또한 좋다. 사시사철 등산복 차림에 이발도 서로 해 주고, 도심에 나와 돈 쓸 일도 거의 없기 때문에 한 달 생활비는 30만 원이면 족하다. ‘너무 가난해서 너무 행복한 삶’(문학사상사 발행)의 저자로 유명한 아내 김씨는 "요즘엔 찾아오는 지인들마다 빈 손으로 오는 법이 없어 돌려보내야 할 정도"라며"하루에 커피 5잔만 팔아도 넉넉하다"고 말한다. 결혼 20주년을 1월 말 에베레스트에서 맞은 부부는 무소유를 넘어 나눔을 실천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꼭 물질이 있어야 베푸나요? 우리가 가진 시간을, 사랑을, 정신적 깨달음을 나누며 살고 싶어요."

글·사진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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