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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바람의 그림자 1,2 - 현란한 문체로 푸는 ‘잊혀진 책’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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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바람의 그림자 1,2 - 현란한 문체로 푸는 ‘잊혀진 책’의 비밀

입력
2005.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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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가치는 그 비밀이 지켜져야만 하는 사람들의 가치에 달려 있다."(1권 p.21) 카를로스 사폰(사진)이라는 이 낯선 스페인 작가가 소설 ‘바람의 그림자’에 풀어놓은 문장의 흡입력에 저항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독서라는 예술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그것은 내밀한 의식이라고, 책은 거울이라고, 우리들은 책 속에서 이미 우리 안에 지니고 있는 것만을 발견할 뿐이라고, 우리는 정신과 영혼을 걸고 독서를 한다고, 위대한 독서가들은 날마다 더 희귀해져간다고."(2권 p.386)

작가의 이 스산한 내면의 독백을, ‘위대한…’까지는 아니더라도 독서가 취미입네 떠벌린 이력이 없지않은 터수에, 매정하게 외면하기도 어려웠다. 오히려, 이 역설적 협박은 어린 날 받은 어떤 구애의 기억처럼 떨리는 기쁨이었다.

소설은 10살 짜리 꼬마 다니엘이 ‘잊혀진 책들의 묘지’라는 기묘한 고(古)도서관에서 한 권의 책을 얻게 되면서 시작된다. 훌리안 카락스라는 인물이 쓴, 표제와 동명의 그 책에 어린 다니엘은 순식간에 매료되고 작가와 책에 얽힌 사연들에 겁 없이 덤벼든다. 서사는 작가 훌리안과 주변 인물들의 굴절된 사랑과 우정 음모를 한 축으로, 비밀을 추적하는 다니엘의 이야기를 다른 한 축으로 긴박하게 이어진다.

추리 서사의 박진감으로 치닫다가 러브로망을 연상케 하는 감미로운 터치로, 근세 고전의 중후한 울림으로 전변하는 그의 문장을 두고, 그의 책을 꼼꼼히 뜯어 읽은 이들은 세르반테스에서 보르헤스로 이어지는 스페인 문학 전통의 빛나는 계승이라고도 한다지만, 그 다채로운 문체의 조화가 드문 성과라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두 가닥의 서사가 어느 순간 만나 얽히며 뻗어간 한 지점에서 ‘책’과 책의 비밀이 드러난다. 소설 속 모든 갈등이 응축된 지점이자, 모든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의 비밀로서의 상처가 드러나는 현장이다. 삶의 큰 고통들은 기억에 관계된 것이기 쉽고, 예측을 불허하는 기억의 도발 앞에 삶은 늘 무기력하지 않던가.

이 소설의 또 하나 숨은 주인공은 작품의 무대인 바르셀로나다. ‘화사한 빛과 뿌연 안개가 공존하는’, 사폰의 문체를 닮은 이 유서 깊은 스페인의 도시는 후안 미로의 회화와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 묘사들로 현현하며, ‘마녀처럼 매혹적인 여인’의 향기를 발산한다.

작가는 ‘고딕 바르셀로나 쿼텟 4부작’의 하나로 이 작품을 구상했고, 지금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두 번째 책을 쓰고있다고 한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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