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31일 외무성 담화는 "우리가 핵무기 보유국이 된 만큼 6자회담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군축회담이 돼야 한다"로 요약된다.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은 이 담화가 6자 회담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두 가지 메시지를 모두 담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6자회담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의사와 ‘군축’이라는 새로운 조건을 꺼내 회담 틀을 흔들려는 의도가 동시에 엿보인다는 얘기다. 미국 등 6자회담 참가국들이 북한의 이 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북핵 국면이 좌우될 전망이다.
북한 외무성 담화의 긍정적 측면은 북한의 공식 입장이 나왔다는 사실 그 자체다.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미국이 북한과 6자회담 형식에 대해 인내심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담화가 나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침묵을 지키는 것 보다는 이처럼 요구사항을 내거는 것이 상황 진전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3월 중순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한·중·일 3국 방문 이후 ‘북한의 무조건적인 회담 복귀’를 촉구하는 미국의 압력이 거세졌다. 이런 가운데 박봉주 북한 내각 총리의 중국 방문으로 중국을 매개로 한 북미 간접접촉이 이뤄진 결과물이 이날 담화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이 새 조건을 내세웠지만, 미국의 압박에 답을 했다는 면에서 일말의 희망이 보인다는 뜻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과 동등한 위치에서 핵무기 군축문제를 논의하겠다는 뜻으로 6자회담의 틀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은 태도여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협상 모양새를 중시하는 북한은 4차 6자회담에 비핵화와 군축이라는 새 조건으로 6자회담 복귀를 명분을 쌓고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또 2·10 외무성 성명의 연장선상에서 핵무기 보유를 재차 강조하며 자신을 협상 파트너로 인정해달라는 요구도 내비쳤다.
물론 이 담화가 6자회담에 나가겠다는 직접적인 선언은 아니다. 또 6자회담의 틀과 의제를 바꾸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며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 이도 많다. 특히 북한이 "6자회담은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포괄적 방도를 논하는 장소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 부분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시작된 6자회담의 기본 취지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번 담화에서 군축문제를 제기하며 향후 북미 국교수립, 체제보장 등 궁극적인 목표를 내보였다. 그러나 미국은 6자회담의 목적을 북한 핵문제 해결로 한정시키고 있다.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세운 것은 북한 입장에서는 당분간 압박을 피하면서 시간을 벌겠다는 뜻으로도 보인다. 미국이 북한의 담화를 수용하지 않는 한 지지부진한 국면이 계속될 것이란 얘기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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