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국무총리가 31일 공개석상에서 외환보유액 전망을 구체적인 수치까지 대며 거론해 외환전문가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한마디로 부적절하고 부주의했다는 지적이다.
이 총리는 이날 고려대 경영대학원 초청강연에서 "올해 외환보유액은 2,200억~2,3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환전문가들은 "책임 있는 정부당국자라면 외환보유액 전망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라며 "정부의 보유액 전망은 단순한 ‘전망’이 아니라,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어느 나라 정부도 외환보유액 예상치를 내놓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 총리는 이날 ‘2,000억달러를 조금 넘는 현재의 외환보유액에 연간 무역흑자로 유입될 200억달러를 더하면 대체로 연말 보유액은 2,200억~2,3 00억달러에 달할 것’이란 단순계산법에 기초해 별 뜻 없이 얘기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무역흑자액 200억달러가 보유액으로 가산된다는 것 자체가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전문가들은 고개를 내젓는다.
결국 이 총리의 외환보유액 언급은 ‘외환당국의 연말 외환보유액을 이 정도까지 늘리겠다’ ‘이를 위해서 이 정도 시장개입을 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부적절한 발언이자, 자칫 시장에 큰 파장을 줄 수 있는 부주의한 발언이라는 것이다.
이 총리가 "적정 외환보유액은 1,500억~1,700억달러이며 어느 경우로 보든지 300억~500억달러는 과잉상태"라고 말한 것 역시 논란의 소지가 있다. 적정 외환보유액 규모에 대해선 ‘정답’이 없다는 게 정설이다. 재경부는 현 외환보유액에 대해 ‘적정 수준을 넘어섰다’는 입장인 반면 한은은 ‘지금도 부족함은 없지만 분단상황 등을 고려하면 더 쌓아야 한다’는 시각을 갖고 있을 만큼 외환당국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상태다.
한은 측은 "외환보유액의 운용수익률을 높이자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과잉상태로 규정하기는 곤란하며 지금 상태에선 주식 부동산 같은 자산에까지 공격적으로 투자하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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