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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위장취업과 위장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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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위장취업과 위장전입

입력
2005.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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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한 대학 친구는 오른손 손가락이 셋 밖에 없다. 이 친구의 손가락 결손에는 시대의 아픔이 담겨있다. 그 친구는 80년대 초 대학을 졸업한 후 노동운동이나 재야운동을 택하던 당시의 대부분 운동권 학생들처럼 인천쪽의 한 공장에 고졸출신으로 신분을 속이고 취업했다. 이른바 ‘위장취업’을 한 것이다. 하지만 철판을 잘라내는 프레스 일에 서툴렀던 그 는 어느날 야근을 하다 그만 실수로 손가락 두개를 잘려버렸다.

대학을 졸업했거나 중퇴하고 노동운동을 위해 공장에 기능직 근로자로 취업하는 위장취업은 80~90년대 학생운동의 한 문화를 이뤘었다. 1986년 세상을 놀라게 했던 부천서 성고문사건의 피해자 권인숙(당시 22·서울대 의류학과 제적)씨도 위장취업자였다. 노동조합이 새로 결성되거나 노사분규가 발생하는 사업장마다 위장취업자들이 배후에 있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자 정부는 이들을 각종 희한한 혐의로 처벌했다.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공문서위조 또는 변조, 사문서위조 및 동행사 등이었다. 신분을 위조하기위해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증을 변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80년대 중반기에는 위장취업이 워낙 일반화해 거의 매년 1.000여명의 위장취업자가 잇달아 적발될 정도였다.

새삼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려져 간 위장취업을 거론하는 이유는 최근 고위 공직자들의 ‘위장전입’을 통한 부동산투기가 문제화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기 때문이다. 현지 주민이 아니면 농지를 구입할 수 없는 규제망을 뚫기 위해 일부 공직자들은 주민등록만을 옮긴 뒤 땅을 사들였다. 그 시절 학생들이 노동운동을 위해 기득권을 포기하고 공장에 위장취업 해 손가락이 잘리거나 신분이 탄로나 감옥에 끌려갈 때 일부 공직자들은 시골 논밭으로 몰려가 ‘가짜 농민’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논밭을 사들였던 것이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최영도 전 인권위원장 등 최근 위장전입을 통한 부동산투기 사실이 드러나 장관급 공직자들이 잇달아 낙마하자 청와대 김완기 인사수석은 "요즘 50~60대 중에 (장·차관) 안하겠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청와대 인사수석실 관계자에 따르면 실제로 장관직을 이런 저런 이유로 고사한 경우가 여러 명 있었다고 한다. 공직자의 청렴도에 대한 잣대가 그만큼 엄격해졌음을 실감하게 하는 삽화다.

공직자들이 부동산투기 의혹으로 불명예 퇴진하는 사태가 잇따르자 사회 일각에서는 위장전입을 통한 부동산 투기가 별다른 죄의식 없이 횡행하던 20~30년 전의 일을 문제 삼아 유능한 인재를 사장시키는 것은 좀 지나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인맥풀이 빈약한 나라의 현실에 비추어 도덕적 사회를 만들려다 너무 많은 사회적 손실을 자초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부동산 투기사실이 드러나 상처를 입은 당사자들도 "당시에는 누구나 그랬는데…"라며 억울해 할 것이다.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공직자 재산등록제를 도입한 한 전직 대통령이 갈파한 "공직자들이 부와 명예를 동시에 탐해서는 안 된다"는 명제는 언제나 우리사회의 최고의 덕목이라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운동권 학생들의 위장취업이 역사의 한 페이지로 스러져갔듯 투기를 위한 위장전입도 이젠 역사박물관으로 사라져가야 할 것이다. 위장전입으로 고위공직자들이 상처를 입는 요즘 사태가 훗날 투명사회로 성숙해가기 위한 하나의‘통과의례’로 기록되길 기대해본다.

윤승용 정치부장 aufheb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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