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교 때 잠시 대관령에 올라가 농사를 짓고 내려온 것처럼 이 친구도 교실의 다른 친구들보다는 나이가 들어서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 되어 태백 탄광지역에서 강릉에 와 학교를 다니며 하숙을 하는 이 친구의 방에 놀러 갔다. 너는 무얼 하다가 남보다 고등학교를 이태나 늦게 다니게 되었나, 내가 물었는지 아니면 그 친구가 먼저 입을 열었는지 아무튼 서로 그 얘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대관령에 올라가 지은 고랭지 채소농사 얘기를 짧게 했고, 그 친구는 열 여섯 살에 경험한 자신의 첫사랑 얘기를 하였다.
태백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 서울에서 내려온 광업소 부소장의 딸과 광부 아들간의 사랑 얘기였는데, 그 얘기가 당시 우리 수준으로 보자면 그렇게 애절할 수가 없었다. 소설 ‘소나기’의 무대를 그대로 탄광촌으로 옮겨놓은 듯했다. 조금 미심쩍은 데가 있긴 했지만, 나는 그대로 그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혼자 울면서 고개를 넘어가는데, 저쪽에서 소가 넘어오더라고." "소가 왜?" "이런, 왜 소가 넘어오겠나. 오늘이 만우절이니까 속아 넘어오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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