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서 ‘노벨상’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화해 하나의 관용표현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예컨대 ‘노벨상 감’이라는 말은 정말 노벨상을 받을 만한 경우에도 쓰이지만, 그냥 대단한 일을 일컫는 일상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노벨상에는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문학상 평화상 경제학상 등 6개 분야가 있다. 과학기술의 기반이 되는 수학은 노벨상 분야에 포함돼 있지 않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 설에 따르면 노벨상을 제정한 노벨은 수학이 실용성과는 거리가 있는 학문이라고 여겨 노벨상에 포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야사(野史) 성격의 다른 설에 따르면 노벨은 당시 최고의 수학자였던 스웨덴인 마그누스 미탁레플러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만일 노벨 수학상을 둘 경우 그에게 첫 수상의 영예가 돌아갈 것을 우려해 의도적으로 수학을 제외했다고 한다. 노벨이 정말 사적인 이유 때문에 수학상을 두지 않았는지 그 진위는 알 수 없으나, 여러 분야의 기초 학문인 수학에도 의당 노벨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까지 수학 분야에서 노벨상에 견줄만한 상은 ‘필즈상(Fields medal)’이었다. 이 상은 여러 면에서 노벨상과 차이가 있다. 4년에 한 번씩 수여하고 수상자 연령이 만 40세 미만으로 제한돼 있다. 상금보다 명예가 중요하기는 하겠지만 필즈상의 상금은 1만 달러(약 1,000만원)에 불과해 역시 노벨상과 큰 차이가 있다.
노벨상에 필적할 만한 상을 제정하고자 하는 수학계의 염원은 ‘아벨상(Abel prize)’으로 그 결실을 맺었다. 아벨상은 매년 수상자를 내며 연령 제한도 없다. 상금은 노르웨이 크로나로 600만, 미화로 약 100만 달러(한화 10억원)이므로 여러 면에서 노벨상과 동격이라고 할 수 있다.
2003년 첫 수상자를 낸 아벨상은 노르웨이의 수학자 닐스 헨릭 아벨(Niels Henrik Abel, 1802~1829)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여러 수학자 중 굳이 노르웨이 출신인 아벨의 이름을 넣은 것은 스웨덴 출신인 ‘노벨’과 발음이 유사하고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북유럽의 이웃 국가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수학자 아벨의 업적 중 중요하게 꼽히는 것은 불과 19세 때 5차 방정식의 일반해(一般解)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수학자들은 1차 방정식에서 시작해 자연스럽게 2차, 3차, 4차 방정식으로 차수를 높여가면서 일반해를 찾았다. 이 때 3차 방정식의 해법은 2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이용하고, 또 4차 방정식의 해법은 3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이용하는 식으로 전개됐다. 따라서 4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이용하면 5차 방정식의 해법을 알아낼 수 있으리라 추측했다.
그러나 5차 방정식의 해법을 찾는데 도전한 기라성 같은 수학자들은 모두 손을 들고 말았다. 5차 방정식 문제는 약 3세기 동안 수학의 난제로 남아 있다가 결국 아벨에 의해 일반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됐다. 아벨은 5차 방정식에 관한 논문을 당시 수학계의 최고 권위자였던 가우스(Gauss)에게 보냈으나, 가우스는 논문을 읽어 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한다. 결국 아벨은 당대에는 인정 받지 못한 채 27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아벨의 수학적 재치를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있다. 중학생 시절 아벨은 수학 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마지막에 날짜를 3√6064321219라고 적었다. 3√a은 세 번 곱해서 a가 되는 수를 말한다. 예를 들어 3√8은 세 번 곱해서 8이 되는 수, 즉 2다. 계산기로 3√6064321219를 계산하면 약 1823.5908이 된다. 그러므로 편지를 작성한 해는 1823년이고, 소수점 아래의 0.5908을 계산해 월일을 알아내야 한다. 365×0.5908=215.64이고 평년인 1823년에서 215일째 되는 날은 8월 3일이므로 215.64에 해당하는 날짜, 즉 편지를 쓴 날짜는 8월 4일이 된다. 올해의 아벨상은 헝가리 부다페스트 태생의 피터 랙스(Peter Lax)에게 돌아갔다. 랙스는 23세인 1949년 미국 뉴욕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51년 이후 뉴욕대 쿠랑 수리과학 연구소에서 활동을 계속했다. 파리대를 비롯해 9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아벨상 외에도 여러 유명한 상을 휩쓸어 온 수학계의 대가이다.
아벨상 선정위원회는 편미분방정식 이론과 그 응용에 크게 기여한 랙스의 업적을 높이 평가해 수상자로 결정했으며, 노르웨이의 국왕 하랄드(Harald) 5세가 5월 24일 오슬로대에서 아벨상을 직접 수여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에도 언젠가는 아벨상이나 필즈상을 받을 수학자가 출현할 것을 기대하면서, 1년 가까이 계속해 온 칼럼을 끝맺으려 한다. ‘수학으로 세상 읽기’라는 칼럼은 수학을 어렵고 따분하게 생각하는 독자들의 편견을 조금이라도 해소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에서 시작됐다.이 칼럼이 수학에 대한 독자들의 부정적인 선입견을 다소나마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는데 일조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그 동안 칼럼을 읽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아쉬움 속에 내키지 않는 마침표를 찍는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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