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수마트라인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가 석 달 만에 다시 재앙의 섬으로 변했다. 이번 지진은 지난해 12월26일 지진 당시 발생한 에너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30만명의 인명을 앗아간 남아시아 지진해일 참사의 속편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이 지역에서 제3의 참사가 발생할 가능성도 경고하고 있다.
◆ 지각판의 충돌에너지 = 12개로 이뤄진 세계 지각판 가운데 유라시아판은 서쪽의 인도·호주판, 동쪽의 태평양판 사이에 끼어 있다. 수마트라 서쪽 순다 군도와 안다만 군도는 유라시아판과 인도·호주판의 경계면에 자리해 있다. 활동적인 인도·호주판은 매년 동북 방향으로 6㎝가량 움직이며, 유라시아판 밑으로 들어가고 있다. 수마트라 서쪽 순다 군도 아래의 단층이 수마트라 섬 지각을 들어올리며 지각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올 1월6일 리히터 규모 6.2, 이 달 25일에는 5.9 등 지진이 수마트라를 계속 맴돌았다. 이번에도 두 지각판의 충돌로 축적된 에너지가 분출한 것으로 분석된다.
◆ 12월 지진의 여진? = 하필 수마트라 남쪽에서 다시 지진이 발생한 까닭은 지난해 12월 발생한 지진의 영향이 크다. 이번 지진을 정확히 예견한 영국 얼스터대 존 매클로스키 박사는 "수마트라 지역처럼 지각판이 겹치는 지역의 대지진은 두 번 일어난다"며 규모 8.5의 지진을 경고했다. 그에 따르면 12월 지진으로 방출된 에너지가 인접한 두 단층 사이의 압력을 한층 높여 추가 지진을 일으켰다. 때문에 이번 지진을 ‘여진’으로 분류하는 학자도 있다. 12월 지진을 예견했던 캘리포니아공과대(CIT) 케리 지 교수도 "형태 등으로 볼 때 12월 지진과 ‘쌍둥이 형제’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음 지진은 어디? 그 동안 지진 에너지가 북쪽과 남쪽 가운데 어디로 이동하는가가 관심사였다. 과학자들은 에너지가 북진, 인도 아삼주가 희생양이 될 것으로 경고해 왔다. 그러나 이날 지진으로 에너지는 남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태평양쓰나미경보센터(PTWC)는 "북쪽으로의 압력은 완화됐으며, 그 에너지의 힘이 남쪽으로 응축되고 있는 것 같다"며 아프리카 동북부 모리셔스의 로드리게스 군도를 지목했다. 유라시아판의 동쪽 경계부이자 환태평양 화산대가 위치한 동아시아도 지진압력이 증가할 것이란 예상이다. 이 지역에선 이 달 20일 일본 큐슈지방 후쿠오카 현 북서쪽에서 7.0의 강진이 발생했다.
◆ 쓰나미 왜 안났나 = 예상과 달리 쓰나미(해일)를 동반하지 않은 이유를 놓고 학자들 간에 논쟁이 불붙었다. PTWC 등은 진앙에서 1,000㎞이내 해안지역에 쓰나미가 일 것으로 봤다. 리히터 규모 7.9 이상이면 쓰나미와 해수면 상승으로 광범위한 피해가 일어난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와 호주 사이 코코스 제도에선 23㎝, 스리랑카에선 25~30㎝의 파도만 관측됐을 뿐이었다. 진앙 근처 시멜루 등 일부 섬지역에 3c높이의 쓰나미가 목격됐지만 이외에는 쓰나미가 보고되지 않고 있다.
상당수 학자들은 이번 지진의 형태가 수평단층식이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지진은 수평단층과 수직단층으로 나뉘는데 이번에는 한쪽을 들어올리기 보다는 엇갈리는 수평단층이란 설명이다. 수직단층처럼 무거운 지각판이 가벼운 지각판 밑으로 갑자기 들어가면 대규모 쓰나미나 지각균열이 발생한다. 10c의 쓰나미를 일으킨 12월 강진은 지각이 11~20c나 솟구친 수직 단층이었다.
다른 학자들은 수직단층이 발생했으나 그 각도가 작았다고 보고 있다. 또 진앙지 남쪽의 섬들이 해일 에너지를 흡수했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 교토(京都)대학 지진예지센터는 "지진의 규모로 볼 때 관측되지 않았을 뿐 분명히 큰 해일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 이번엔 국제경보체계 신속 대응/ 하와이 쓰나미센터, 20분만에 각국에 경고 메시지
쓰나미 피해를 막기위한 국제경보체계가 작동했다.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 소재한 태평양쓰나미경고센터(PTWC)는 29일 수마트라 연안 인도양에서 리히터 규모 8.7의 지진이 발생한 후 20분 만에 "수마트라 섬 인근의 강력한 지진으로 인해 쓰나미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 메시지를 각국에 타전했다. 동시에 지진자료를 담은 수만통의 이메일이 연구소와 기상청에 전송됐다.
이는 지난해 12월26일 거의 1시간이 지나서야 쓰나미 발생 가능성을 알리는 등 늑장 대응한 것과는 비교되는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PTWC는 곧 속보를 통해 "이번 지진은 발생지역 인근 해양에 쓰나미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며 "해당지역 관계자들은 이 가능성을 인식하고 즉시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PTWC는 또 구체적인 행동지침으로 "진앙으로부터 수천 km 이내의 해변에 대한 소개령이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지진발생 2시간 후 PTWC는"진앙 주변으로 주목할 만한 쓰나미가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쓰나미 해제경보를 내렸다. 이 같은 PTWC와 그 상부 기관인 국립해양대기국(NOAA)의 민첩한 대응 뿐 아니라 태국을 비롯한 피해 예상국가의 대처도 신속했다. 태국 인도 말레이시아의 해안에서는 지방 당국이 심야에 주민과 관광객을 신속하게 내륙으로 대피시켰다고 CNN 등이 전했다.
지난해 참사때 NOAA는 쓰나미가 덮치기 1시간 전 이를 파악했으나 피해 예상 국가들에 이를 경고할 방법도 없었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 인도양 주변국 이모저모
28일 밤 깊은 잠에서 깨어난 인도양 주변국 주민들은 일제히 패닉 상태에 빠졌다. 지난해 지진의 피해가 가장 컸던 인도네시아 반다아체의 주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집 밖으로 뛰쳐나온 뒤, 무조건 고지대를 향해 내달렸다. 엄마는 아이의 손을 잡고 캄캄한 거리로 나와 신의 가호를 외쳤다. 수천명의 인파와 차량이 몰려나오자 거리는 일순간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간신히 복구됐던 전화와 전기도 다시 끊겨 공포가 더했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작은 가방에 옷가지만 챙긴 다음에 오토바이나 차에 뛰어올랐다. 임시텐트에 거주 중인 사람들도 지진해일의 기억을 떠올리며 동참했다. 근처 이슬람 사원에 들어가 "어디로 가야 하냐"며 울부짖는 주민도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서도 현지 경찰이 비상경계령을 내렸지만 동요가 심했다. 진동이 20여초 동안 이어지자 고층빌딩에서는 사람들이 몰려나왔고 호텔 투숙객들도 놀라 뛰쳐나왔다. 한 목격자는 페낭 지역의 일부 전화선이 두절됐다고 전했다. 인근 어민들은 지진해일로부터 배를 보호하기 위한 대비에 들어갔다.
태국에서는 기상청이 지진해일 발생 가능성에 대한 긴급 경보를 내린 후 남부 안다만해 6개주 주민과 관광객들을 즉각 대피시켰다.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은 공포 속에서 한 시간여 동안 고지대에 대피해있다 경보가 해제된 새벽 3시께 숙소로 되돌아갔다.
간신히 휴양지로서의 기능을 복구한 푸껫에서도 관광객들이 지난해 지진해일을 떠올리며 고지대로 피신하기 위해 잠옷바람으로 뛰쳐나왔고, 파통비치 등 중심가는 몰려든 차량으로 한 때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 인도 남부에 위한 타밀 나두주에서도 지진해일 경고방송에 수만명의 주민들이 긴급 대피한 뒤 날이 밝은 후에야 귀가했다.
이번 지진의 진앙지에서 가장 가까운 니아스 섬은 큰 피해를 입었다. 인구 3만명인 구눙시톨리시에서는 건물 70% 이상이 파괴됐다. 구눙시톨리 시의 아구스 멘드로파 부시장은 현지 방송에서 "296명이 죽었고 수백 명이 폐허에 갇혀 있으며 마치 죽음의 도시 같다"고 말했다. 시당국은 매몰된 사람들을 구조할 중장비가 없어 정부에 긴급지원을 호소했다.
인근 시뮤루섬에서는 3미터 높이의 지진해일이 섬 일부를 덮쳐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뮤라섬은 통신이 두절돼 정확한 피해상황을 알 수 없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유수프 칼라 인도네시아 부통령은 "니아스섬의 사망자가 늘어나 2,000명에 달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밝혔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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