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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영어표기 금지법 통과

입력
2005.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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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겔릭어)이 서야 민족과 나라가 선다."

영어의 그늘에 가려 자국민으로부터도 점차 버림받고 있는 겔릭어를 살리기 위해 아일랜드 정부가 나섰다. 아일랜드 정부는 29일 서부 해안 지역을 시작으로 도로 표지와 공공 지도 등에서 영어를 쓸 수 없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아일랜드는 지금까지 2,300여 개 이르는 마을, 도시, 도로 이름 등에 영어와 겔릭어를 함께 써왔는데 법의 시행으로 이들 모두에서 영어 이름은 빠진다. 공공기관의 문서 역시 겔릭어만 쓰기로 했다. 단 민간이 만드는 지도에는 영어가 계속 쓰일 수 있다.

중앙정부의 결정에 지방 정부들 역시 "겔릭어를 모르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길까 걱정된다"면서도 "애국심을 위해 관광수입의 희생을 감수할 수 있다"며 지지하고 있으며 중앙정부는 민간 영역까지 넓혀지기를 바라고 있다.

이번 법 통과에는 과거 영국의 지배에 끝까지 저항하며 싸웠던 Gaeltacht이라 불리는 아일랜드 서해안의 세 지역이 선봉에 섰다.

겔릭어 수난의 역사는 19세기 영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아일랜드인들 사이에는 겔릭어 대신 영어를 택하는 수가 빠르게 늘었고 1922년 독립 후에도 이 속도는 줄지 않아 현재 390만 명의 인구 중 겔릭어 사용자는 고작 5만5,000여명에 그칠 정도다.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겔릭어를 사용하도록 하는 등의 극단적인 대책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한 번 아일랜드의 마음 속을 파고든 영어를 떼내기는 쉽지 않았다.

심지어 40%의 아일랜드인들이 스스로 "겔릭어를 잘한다"고 하면서도 실제 생활에서는 겔릭어를 거의 쓰지 않고 있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아일랜드를 지배하는 영어의 힘은 무섭다. 공영 라디오 방송이 영어 팝송을 최근 방송하기로 결정했고 공영 TV 방송국은 미국 서부 영화를 비롯한 영어권 영화를 내보내고 있다. 또 정부와 국회 내에서 이뤄지는 토론 중 불과 1%만 겔릭어로 진행되고 있다고 정부 관계자는 말했다.

이렇듯 영어가 아일랜드의 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아일랜드의 겔릭어 살리기의 길은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너무 오랫동안 쓰지 않은 탓에 마을이나 거리에 어떤 겔릭어 이름을 달아야 할 지에 대해서 벌써부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에 옥신각신하고 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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