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MIN’이라는 프로그램 로고가 강조하듯, MBC 토크쇼 ‘이문세의 오아시스’(이하 오아시스·사진)는 35분 동안 방영된다. 그러나 그 35분을 결정짓는 것은 프로그램 초반, 게스트들이 긍정과 부정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Yes or No’가 진행되는 99초다. 진행자는 게스트가 선택한 ‘Yes’ 또는 ‘No’에 대한 자세한 이유를 묻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Yes or No’는 ‘오아시스’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99초 안에 10여개를 소화해야 하니 질문이 압축적일 수밖에 없다. 또 전후상황에 대한 설명 없이도 시청자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므로, 질문 내용은 게스트에 대한 다소 뻔한 궁금증이나 그의 이미지에 관한 것들로 채워진다. 강제규 감독에게 ‘내가 스캔들이 많은 것은 내가 유명하기 때문이다’라고 묻거나, 영화배우 최민식에게 ‘소주를 정말 좋아하느냐’고 묻는 식이다.
즉, ‘오아시스’는 이미지 게임이다. 알려질 만큼 알려진 유명인을 초대해서, 그만큼 널리 알려진 이미지와 소문들을 확인한다. ‘Yes or No’의 질문을 네티즌에게도 똑같이 던져 그 결과를 소개하는 것이 그 예다. 진행자가 묻는 것은 이미 시청자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들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공격적인 질문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문세는 게스트의 답변을 더 이상 파고들지 않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좀 더 점잖은 것을 빼면, ‘오아시스’는 과거의 일대일 토크쇼보다 진지하거나 전문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러나 ‘오아시스’는 그것을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포장한다. 실제로는 ‘모든’ 분야의 실력자라기보다 연예계의 유명인이 출연하지만, ‘파워피플’이라는 단어로 명목상으로나마 범위를 연예계 바깥으로 넓혔다. 또 방송 복귀라는 명분이 있었던 박경림을 제외하면, 게스트들은 오락 프로그램에서 쉽게 볼 수 없어 진지한 이미지를 풍기는 이들이다. 그만큼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신뢰감을 준다. 이는 재치있는 입담을 지닌 ‘연예인’이면서도 신뢰감을 쌓은 진행자 이문세의 이미지를 통해 극대화된다. 가끔씩 출연자의 심리를 대변하듯 얼굴 대신 주변 사물이나 손, 발등을 담는 화면 구성도 참신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부여한다.
바로 이 점이 ‘오아시스’의 가능성이자 한계다. 한국의 토크쇼가 뒤로 넘어갈듯한 과장된 웃음 없이도 진행된다는 것, 좀처럼 TV에서 볼 수 없었던 인물들이 마음 놓고 출연하는 자리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긍정적이다. 그만큼 ‘오아시스’는 여전히 연예계, 즉 ‘오락’을 좋아하되 경박함에는 질린 시청자들의 욕구를 잘 반영한다.
그러나 결국 35분 정도밖에 방영되지 못하고, 99초짜리 ‘Yes or No’같은 오락적인 가벼움이나마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은 현재 토크쇼의 위치를 그대로 보여준다. 앞으로 ‘오아시스’가 가벼움으로만 채워진 오락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오아시스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오아시스가 사막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강이 되기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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