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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시아보 후폭풍’유언장 작성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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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시아보 후폭풍’유언장 작성 열풍

입력
2005.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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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지내온 테리 시아보의 비극은 미국사회에 생명 윤리와 죽을 권리에 대한 논쟁만을 낳은 게 아니었다. 급식관 재연결을 둘러싼 남편과 친정 부모의 법적 싸움과 한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정치적 이익을 구하는 세태를 지켜보면서 미국인들은 자연스럽게 "내가 저런 경우라면"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시아보처럼 식물 상태로 지내는 환자가 최고 3만 5,000명에 이른다는 사실 앞에 미국인의 관심이 생명선택유언(Living Will)이나 사전의료지시(Advanced Medical Directive) 에 기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8년째 생명선택 유언을 고민해오다 시아보 사건을 접하고 바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는 62세 노인의 고백은 시아보의 비극이 미국인에게 던진 충격을 가늠케 한다.

유언작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때아닌 호황을 맞았다. 5달러를 내면 5가지의 희망사항을 담은 유언을 작성하고 매년 2달러씩 전자 보관료를 내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MyhealthDirective.com’ 같은 사이트는 이용자 수가 40배나 폭증했다.

이 사이트는 "당신이 어떤 처치를 받아야 할지를 법원이 결정토록 하지 말자"며 "사전 희망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의료 전문가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문구로 고객을 유혹하고 있다.

남은 가족이 싸우는 것도 싫지만 판결로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상황을 꺼리는 심리를 간파한 상술이다. 전미변호사협회의 ‘abalawinfo.org’나 국립 호스피스기구의 ‘caringinfo. org’같은 사이트에도 유언 작성 문의가 폭주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망선택유언이 전부는 아니다. 미국 언론은 만일의 경우 생명연장 여부를 결정할 대리인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 전문가는 유언작성 후에도 ‘4D’상황이 생기면 갱신할 것을 조언했다. 삶이 10년(Decade) 연장될 때,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Death) 이혼(Divorce)할 때, 건강 악화(Decline) 진단이 있을 때 희망 조건을 변경하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완벽한 준비가 생명을 둘러싼 법적다툼의 종결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전 유언이 죽음의 모든 상황을 포괄할 수 없으며 더욱이 그런 유언이 지켜진다는 보장도 없다. 인위와 제도로 생명을 끊는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의 생명은 그만큼 존엄하기 때문이다.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생명 윤리의 공방은 계속될지 모른다. 부활절을 보내며 진정한 생명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김승일 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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