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가 들어있는 이 작품에 대해서 역사적 혹은 민족적인 의미로 설명한 많은 글들을 보아왔다. 최근 저작권 해결이라는 사건으로 이슈가 되어 국민적 사고로 바라본 기사나 글도 많다. 오늘 파워클래식은 필자가 연주자라는 관점을 살려서 ‘음악인’으로 바라본 ‘한국환상곡’에 대해 설명하려고 한다. 음악을 이야기 할 때 절대 빼놓으면 안 되는 것, 음악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거대한 오케스트라와 남녀 모두를 동원한 혼성합창으로 이루어진 이 음악은 30분짜리 한 악장이다. 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메타모르포젠’처럼 드물게 보는 큰 길이의 곡이다. 안익태의 스승이 슈트라우스였다는 점도 어쩌면 관계가 있을까. 아무튼, 베토벤 ‘합창교향곡’이나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에 버금가는 효과를 자랑하는 이 작품은 연주회에서 큰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관객이 한국인이 아니라도!)
이 곡의 진짜 제목은 교향적 환상곡 1번 ‘코리아’이다. 쉽게 얘기하자면 오케스트라를 사용하는 자유로운 형태의 작품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아는 애국가의 멜로디가 군데군데 잠깐씩 나오며 뒷부분에 갑자기 엄청난 함성으로 등장하는 ‘우-리- 대한!’의 합창 소리는 한마디로 ‘전율’ 그 자체다. 여러가지 한국 민요의 멜로디도 등장하고 드디어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눈물까지 나오는 감동적인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안익태의 작품은 작곡가적인 법칙과 기술에서 많이 벗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는 작곡가이기 이전에 세계적인 지휘자였고, 그래서인지 지휘자적 경험으로 작곡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어떻게 들으면 ‘로마의 소나무’를 작곡한 레스피기나 러시아의 천재 쇼스타코비치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적 경험을 최대한 살려 기존의 걸작들에 버금가는 ‘효과’를 충분히 살려냈다.
그의 덕택에 우리는 아주 특별한 가치를 지닌 국가를 가질 수 있었다. 어떤 국가가 30분이나 되는 순수 예술작품 안에 절묘하게 녹아 들어가 작곡되었단 말인가! 그는 일제시대 때 우리만의 국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만들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동양인 지휘자라고 연주자들에게 무시당해서 작품공모전에서 연주도 마치지 못하고 내려온 그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의 결심을 실현시켰다. 광복의 순간에 국내에서는 아직도 ‘올드 랭 사인’에 맞추어 애국가를 부르고 있을 때 그는 훨씬 이전부터 자신의 지휘봉으로 해외에서 ‘한국환상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우리 민족의 예술성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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