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지금 들떠 있다. 올해는 ‘라네 사르트르(L’annee Sartre·사르트르의 해)’. 철학자, 소설가, 극작가, 평론가, 사회운동가, 그 모든 것을 아우른 20세기의 지성 장-폴 사르트르(1905.6.21~1980.4.15) 탄생 100주년이다. 프랑스국립도서관(BNF)에서는 사르트르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대규모 전시회 ‘사르트르와 그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의 사상과 문학 세계를 새롭게 탐구하는 학술대회가 준비되고 희곡전집 완간, 전기영화 개봉 등을 앞두고 있다. 여기에다 일본과 미국, 영국, 독일, 스페인 등 사르트르 연구회가 조직된 거의 모든 나라에서 기념 학술대회를 계획하고 있어 ‘라네 사르트르’는 세계적인 행사가 될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사르트르 100주년 기념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불어불문학회(회장 이동렬)는 6월17일 경북대 우당교육관에서 열리는 하계 학술회의 전체회의의 주제를 ‘사르트르와 현대의 지성’으로 잡았다. 사르트르에 대한 세계적인 연구 흐름에 발맞춰 그의 철학이 지닌 현대성을 재발견하자는 것이 학술대회의 목표다.
세계사르트르연구회 한국지부인 한국사르트르연구회는 헤겔과 니체, 하이데거, 들뢰즈의 사상과 사르트르의 철학을 비교 분석한 책을 펴낼 계획이다. 사르트르의 저서 ‘변증법적 이성비판’의 번역도 진행하고 있다. 7월20~30일 프랑스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서 사르트르 연구자인 변광배씨와 윤정임씨는 ‘사르트르와 한국전쟁’ ‘사르트르의 한국수용’이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선다.
160㎝도 채 안 되는 단구에 외모는 볼품없었어도 이 철학자의 지적 영향력은 세계적이었다. 1905년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명문 파리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철학교사가 된다. 시몬 드 보부아르와 만난 것도 이때. 후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을 독자적으로 수용한 논문 ‘존재와 무’에서 그는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과 자발적인 결단에 의해 스스로를 만들어가야 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실존이 모든 것에 앞선다는 그의 철학적 사유는 소설 ‘구토’와 ‘자유의 길’ 등 뛰어난 문학작품으로도 옮겨졌다.
그의 일생은 참여와 저항의 표상이었다. 2차대전 중 레지스탕스로서 나치에 대항했고, 종전 후에는 대부분의 지식인과 같이 공산주의 운동에 가담했으나 56년 소련의 부다페스트 침공 이후 공산주의와 멀어졌다. 1960년 프랑스 식민지인 알제리의 독립전쟁을 지지하는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됐지만 ‘부르주아의 상’이라는 이유로 수상을 거절했다.
‘부르주아적 결혼’에 대한 저항으로 보부아르와 ‘계약결혼’으로 평생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그의 유명한 명제는 인간이란 자유롭게 자신을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내에서도 사르트르의 의미는 각별하다. 한국전쟁을 치른 전후세대에게 실존주의는 암울한 시대를 견디게 한 정신적 버팀목이었다. 박이문(75) 미국 시몬스대 명예교수는 "지적으로 나를 바꾼 한 순간만을, 한 사람만을, 한 저서만을 들라면 나는 1953년도 봄 어느날을, 사르트르의 이름을, 그리고 그의 저서 ‘존재와 무’, 아니 이 책에 담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해설한 한 권의 일본어 번역책을 들고 싶다"고 말한다.
한국전쟁도 사르트르에게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남한이 북침한 것"이라는 프랑스 공산당의 의견을 따랐다가 나중에는 "북한이 남한과 미국의 계략에 빠져 남한을 공격했다"고 말했다. 이 주장은 그와는 의견이 달랐던 철학자 메를로-퐁티와 결별하는 직접적 계기가 됐다. 그러나 정통 마르크시즘보다 더욱 과격했던 사르트르의 좌익이론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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