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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한국 엘리트의 인해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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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한국 엘리트의 인해전술

입력
2005.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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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지난 23일 삼성그룹 사장단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소위 ‘SKY 대학’(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한 해 입학생 수는 1만5,000명으로 이들이 사회요직을 독차지하고 있다"면서 "형평성이나 양질의 교육을 위해 학생 수를 과감하게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 총장은 지난해 11월18일에도 인구 2억8,000만 명인 미국의 상위 10개 대학의 총 졸업생이 매년 1만 명에 불과한데 인구 4,700만 명인 한국에서는 SKY에서만 1만5,000명의 졸업생이 나온다고 지적하면서 "서울대 입학생이 내년에 3,200명으로 줄지만 개인적으로는 2,500명 정도만 뽑아서 가르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정 총장은 모 월간지 2005년 1월호 인터뷰에서도 "현재 서울대는 학부생 2만1,000명에 대학원생이 1만1,000명 가량 된다. 전체 3만2,000명인데, 아주 많은 것이다. 이것은 하버드대의 2배, 예일대의 3배, 프린스턴대의 5배이다. 효율적인 학교 운영이나 연구와 교육의 질 등을 생각하면 학생 수를 지금보다 많이 줄여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비슷한 내용의 발언을 세 번이나 소개한 이유는 정 총장의 소중한 문제의식이 널리 확산돼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해방 후 지금까지 입시제도는 크게는 15번, 작은 변화까지 합치면 36번이나 바뀌었지만, 모두 다 소기의 성과를 얻는 데는 실패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변화가 한국 엘리트 시장에서의 SKY 독점현상을 절대 성역과 금기로 간주한 채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정 총장이 형평성이나 양질의 교육을 위해 SKY 학생 수를 과감하게 줄여야 한다고 역설한 것은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은 탁견이다.

사회 각계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는 SKY 출신들의 능력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이 한국의 강한 연고주의 문화에서 이른바 ‘학연 인해전술(人海戰術)’의 덕을 보았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SKY의 행태는 한국 재벌들의 행태와 비슷하다. 무한팽창 전략, 문어발 전술, 물량공세를 사랑한다.

이들은 늘 캠퍼스가 비좁다고 아우성치면서도 ‘동창회 동문 자격 부여’라는 특전을 앞세워 특수대학원이나 최고지도자과정을 개설하는 등 만인에게 SKY의 은총을 베풀기 위해 안달한다.

최근 철학자 김상봉씨는 그의 탁월한 저서 ‘학벌사회’에서 학벌주의가 ‘현대판 신분제’임을 잘 보여주었다. SKY의 독점 체제는 형평의 문제를 넘어서 진정한 의미의 ‘경쟁’과 ‘엘리트’를 죽인다. 학벌이라는 신분으로 결속된 인해전술식 경쟁에 의존하는 엘리트에게서 무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국내 경쟁력만 강해질 뿐이다. 국외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라도 엘리트는 ‘홀로 서기’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SKY의 정원을 대폭 줄여나가자. 이건 총장 혼자 힘 만으론 안 된다. 사회적 차원의 문제의식과 합의와 지원이 필요하다. SKY의 정원을 대폭 줄이면 그만큼 SKY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짐으로써 기존 ‘입시지옥’을 더 악화시킬 게 아닌가?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단기적으론, 또 어떤 사람들에겐 영원히 그럴 수도 있겠다. 그건 그냥 내버려두자. 엘리트 집단 구성의 다양성이 우리 모두에게 이롭다는 원칙에 충실하기로 하자.

SKY의 정원 대폭 축소로는 성에 차지 않는 사람들도 ‘실천 가능성’에 주목하는 게 좋겠다. SKY가 결사 반대하는 한 그 어떤 학벌주의 완화책도 실현하기 어렵다는 현실 감각을 갖기로 하자. 큰 욕심 부리지 말고 우선 한가지 원칙만 재확인하자. 인해전술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엘리트의 시대는 이젠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SKY는 소수 정예주의로 가면서 사회적 존경을 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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