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폐지안은 인권위가 2003년 참여정부의 출범과 함께 선정한 10대 과제 중 하나로 지난해 11월 제1소위원회의에서 논의를 시작한 이래 3차례나 전원위를 거치고서야 ‘폐지’라는 큰 틀의 합의를 이뤘다. 그러나 9대 1이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폐지 결정을 내렸음에도 어떤 조건과 전제로 사형제를 폐지하고 대체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팽팽했다.
인권위는 14일 열린 전원위에서 ▦조건 없는 사형제 폐지 ▦감형·가석방 없는 종신형으로 대체 ▦평화시에는 폐지하고 전시에만 존치 ▦적용범죄 및 법률을 줄여 존치 ▦현행대로 존치 등 5개로 개선안을 최종 압축했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서는 5개 방안 외에도 각각의 방안을 조합한 새로운 방안들이 제시되는 등 정강자 위원장 직무대행을 포함해 10명의 인권위원들이 제각각 다른 의견을 보였다.
김만흠 위원은 "가석방 없는 사형제 폐지는 국민들의 법 감정을 고려한다지만 결국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고, 문제는 ‘존치냐 폐지냐’의 문제" 라며 조건 없는 폐지를 주장했다. 이해학 위원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오히려 사형보다도 무거운 형벌"이라며 "새로운 삶에 대한 가능성을 법적으로 봉쇄하는 것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완전 폐지에 동조했다. 최금숙 위원과 신혜수 위원도 "사형제 폐지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나 사형폐지의 부작용과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폐지 유예기간을 20년이나 25년 정도로 명시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민의 법 감정을 고려할 때 완전 폐지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많았다. 이흥록 위원은 "정부 수립 이후 획기적인 형법의 개혁이 이루어지는데 국민 법 감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감형·가석방 없는 종신형으로의 대체를 주장했다. 현재 이 방안은 유인태 열린우리당 의원의 대표 발의로 인권위 논의와는 별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의 중이다.
사형제를 폐지하되 전시에만 유지하자는 주장도 쟁점이 됐다. 정인섭 위원은 "전쟁은 공동체의 존망이 달린 문제로 전시에는 사형제를 유지할 수 있는 여유를 남겨두는 것이 타당하다"며 전시에만 사형제를 유지하자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이흥록 위원은 "북한과 휴전협정을 체결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특수성 때문에 전시에만 사형제를 허용할 경우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호준 상임위원은 소수의견으로 "우리나라는 실제 사형이 집행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사실상 사형제 폐지 국가와 마찬가지"라며 "굳이 법률을 바꿔야 할 필요가 없다"고 사형제 존속을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 사형을 법정형으로 규정하고 있는 법률은 형법, 군형법,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등에 관한 법률 등 17개 법률 9개 조항이며, 사형범죄로는 살인죄 등 일반형 사범, 정치적 변혁시에 법제정·개정으로 특정범죄에 사형을 추가하는 경우, 정치범, 공안사범, 군사범죄 등이 있다. 그러나 대법원이 이미 국사형사정책상 사형제도를 존치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도 "사형은 행위의 불법과 행위자의 책임에 비해 현저히 균형을 잃었다고 볼 수 없고 우리의 문화수준이나 사회현실에 미루어보아 당장 무효화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결정한 바 있다. 더구나 2003년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6%가 사형제를 존속시켜야 한다고 답해 논란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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