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인구억제정책을 불과 30여년 만에 폐기하고 출산장려 정책으로 180도 돌아서는 현실을 보면서 사회정책의 단견을 또 한번 실감한다. 원자폭탄보다 무서운 게 ‘인구폭탄’이라 했던가. 사람은 지구를 파괴하는 암적 존재라 했다. "둘도 많다!" "하나 낳아 젊게 살고, 좁은 땅 넓게 살자"고 했다. 아이 많은 가구에는 온갖 불이익을 주었으므로, 2003년의 합계출산율이 1.19명으로 줄었다는 건 인구억제정책이 완벽한 성공을 거뒀다는 얘기다.
그러나 합계출산율 저하에 따른 ‘소자화(少子化)’ 추세가 급속도로 진행되자 이번에는 인구 구조의 고령화, 노동력 감소, 시장 축소, 저성장, 연금제도 붕괴 등을 이슈로 등장시켰다.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저출산고령화위원회’를 만들고 ‘국민운동본부’까지 구성한다는 소식이다. ‘위원회 공화국’답게 위원회가 또 늘어나겠지만, 정책 오류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는 이는 없다.
지역적으로나, 지구적으로나 인구증가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결과였으므로, 인구억제 자체가 잘못 설정된 정책방향이었다.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에서 탈출하고 도구를 만들어 농경을 시작하고 과학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인구는 단계적으로 크게 증가했다. 1999년 유엔인구기금(UNFPA) 사무국장은 말했다. "세계 인구 60억 돌파는 성공을 의미한다."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우리사회의 소자화가 가속된 데는 유별난 ‘아파트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주거형태의 절반이 넘은 아파트는 핵가족화를 촉진해 소자화를 부채질한 것이다. 이를 포함한 사회여건들을 감안할 때 출산율 감소추세를 반전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출산장려가 아니라 소자화를 기본 전제로 한 제도를 강구해야 한다. 특혜성의 출산장려금 지급은 공적 재원(세금)의 분배 형평성과도 상치된다. 소자화로 인한 사회적 부담을 균등하게 분담하는 시책이라야 한다. 임기응변적 출산장려금보다는 장기적으로 보육시설 등을 비롯한 사회기반시설의 확충에 투자해야 한다. 생산성 향상의 저변을 다지고, 생산연령 인구를 65세에서 70세로 확대하며, 여성인력의 진출을 활성화하는 기틀을 든든히 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란 근본적으로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일 수가 없다. 출산은 어디까지나 선택의 자유에 속한다. 막대한 양육비와 교육비, 결혼비용까지 대야 하는 현실에서 누가 돈 몇 푼 받으려 아이를 가지겠는가.
조영일 연세대 화학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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