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에서 미국, 러시아, 중국 그리고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 등 ‘빅4’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그루지야, 우크라이나에 이어 키르기스스탄까지 구 소련권 국가를 휩쓸고 있는 민주화 태풍이 도화선이 됐다. 시민혁명이 가져올 힘의 공백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세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거친 사막으로 뒤덮인 중앙아시아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진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은 ‘최후의 자원보고’로 불리는 카스피 해 일대의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 때문. 우즈베키스탄은 자체적으로 석유매장량이 막대하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을 차지해야만 카스피 해 자원의 수송로를 확보할 수 있다. 또 지정학적으로도 4대 세력이 만나는 교차점이다. 민족 문제를 볼 때도 이곳의 안정이 무너질 경우 국내의 안보 마저 흔들릴 우려가 있다.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을 동시에 겨냥, 경제 협력을 미끼로 미국의 입맛에 맞는 정권이 들어서도록 하고 있다. AFP통신은 미국이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젠 그리고 몰도바 등에 민주 정부가 들어서도록 하는 GUAM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전했다. 또 중동의 민주화 바람과 연계해 중국을 포위하고 석유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민주주의 벨트’를 만들겠다는 의도다. 최근 키르기스스탄의 야당 세력이 사임한 아스카르 아카예프 대통령의 축출을 염두에 두고 총선 전 미국으로부터 수 천 만 달러의 재정지원을 받는 것을 고려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중국과 러시아는 다급해졌다. 중국은 카스피 해와 신장성을 잇는 송유관 공사가 차질을 빚을까 전전긍긍이다. 송유관 공사는 2003년에 1차 공사를 완공한데 이어 지난해 9월 나머지 2차구간 공사에 착수한 상태. 그런데 미국이 중앙아시아를 차지할 경우 이 곳을 관통해야 하는 송유관 사업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특히 중앙아시아의 민주화 불길이 수그러들지 않을 경우 맞닿아 있는 신장위구르자치구의 분리독립운동에 불길이 옮길지 모른다는 점이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러시아 역시 2003년 키르기스스탄에 500명 병력을 주둔시키기로 한데 이어 지난해 타지키스탄에 5,000명 규모의 군 병력을 주둔시키기로 하는 등 세력 확장을 통한 카스피 해 따내기에 여념이 없다.
중국과 러시아는 2001년 상하이협력기구를 발족시킨 이후 이 지역을 사실상 공동 관리해왔다. 두 나라는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함께 막자’며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을 ‘같은 편’으로 묶어두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침공 이후 발 뻗을 곳이 없어진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은 중앙아시아를 권토중래(捲土重來)의 근거지로 노리고 있다. 7세기 이후 중앙아시아는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아왔기 때문에 민중의 마음 속에는 이슬람이 뿌리 깊이 내려 앉아있다. 최근 친미·친러 성향의 지배 세력이 물러나면서 정국이 불안해진 것도 이슬람 세력에게 더 없이 좋은 계기다.
이에 AFP는‘히즈 우트 타흐리르’와 ‘우즈벡 이슬람 운동(IMU)’등 탈레반 정권 붕괴 후 절치부심하던 세력들이 최근 범 이슬람 공화국 건설을 추진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27일 보도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 Key Word/ 상하이협력기구
중국,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 여섯 나라가 2001년 설립한 기구. 1996년 우즈벡을 제외한 5개국이 정상회의를 가졌던 ‘상하이 5’가 모태다. 이들 모두 자국 내 소수의 이슬람 세력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었고 공동대처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2001년 우즈벡이 합류, 매년 한 차례씩 정상회담과 합동군사훈련을 갖고 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에서 세력을 넓히고 있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SOC를 활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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