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통신대는 며칠 전 중년의 만학도였던 주부 안명희씨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2005년도 졸업식(2월26일)이 한참 지난 뒤의 일이다. 안씨는 오랜 암 투병 끝에 올해 1월3일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마지막 학기 이수학점이 모자라 학사모의 꿈을 접어야 했던 그는 하늘에서야 소원을 이루게 된 셈이다.
방송대가 뒤늦게 고인에게 명예졸업장을 준 것은 그가 남긴 값진 논문 때문이다. ‘암 환자의 영양관리와 건강보조식품 오남용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그가 지난 학기 암과 사투를 벌여가며 쓴 이 졸업논문은 학사논문으로는 이례적으로 전문학술지에도 게재되고 학회에도 발표될 예정이다.
안씨 본인의 투병기와 환자 80여명 설문조사를 토대로 한 논문은 암 환자들의 식습관과 섭생법, 건강보조식품 선호도 및 치료효과 등을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 드문 주제를 다뤘다. 논문지도를 맡았던 구재옥(가정학과) 교수는 "샘플 확보가 어려운 암 환자들에 대한 일대일 면접조사 결과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클 뿐 아니라 암 환자들의 실제 영양관리에도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라며 "몸조차 가누기 힘든 죽음의 목전에서 어떻게 이런 노작을 낼 수 있었는지 그 열의와 성실함이 놀랍다"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회사원 남편(54)과 장성한 남매를 둔 안씨는 마흔다섯 되던 2000년 방송대에 입학했다. 출장요리사로 일한 경력을 살려 학위 취득 후 조리학교의 강단에 서보는 게 그의 소박한 희망이었다. 예기치 못한 불행이 닥친 것은 3학년에 진학한 2002년 봄. 한식 성묘를 다녀온 뒤 복통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전이성 후복막암 판정을 받았다. 암세포는 이미 다른 장기로 빠르게 전이되고 있었다. 이후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이 시작됐다.
1년 휴학 뒤에도 병세는 그리 호전되지 않았으나 안씨는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복학했다. 응급실로 실려간 적도 여러 번이었으나 학업에 대한 열정은 꺾지 않았다. 지난해 졸업반이 되고서는 부족 학점을 만회하기 위해 서울 강서구 염창동 자택과 동숭동의 방송대 캠퍼스를 오가며 밤늦도록 보충수업까지 빠짐없이 챙겼다. 졸업논문 준비에 들어갔을 땐 본인이 치료 받은 신촌세브란스병원 암센터에서 직접 환자들과 대면설문작업을 벌였고, 국립도서관이며 국회 도서관을 안방처럼 드나들며 자료를 모았다. 논문 주제는 ‘같은 처지에 있는 암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는 생각에 스스로 정한 것이다.
아내의 명예졸업장을 받아 든 남편 김홍주씨는 "아내는 병세악화로 지난해 말 졸업에 필요한 한 과목을 끝내 마치지 못한 것을 너무도 안타까워 했다"며 "불치암 선고를 받고도 3년 가까이 생명을 놓지 않았던 것은 학업이라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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