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인간 테리 시아보(41·여·사진)의 생명연장을 둘러싼 드라마가 열흘 만에 막을 내리려 하고 있다. 20차례가 넘게 법원에 청원을 했던 테리의 부모는 이제 조용히 테리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논쟁은 18일 플로리다 법원의 결정에 따라 7년 간이나 테리에게 연결돼 있던 영양공급 튜브가 제거되면서 시작됐다.
타임 최신호는 이번 사건을 "탐욕으로 가득찬 추악한 비극"이라고 규정했다. 한 여인이 죽음을 선택하는 문제가 정치권과 종교단체의 개입으로 미국을 두 갈래로 갈라놓는 이념 논쟁으로 비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화당 정권과 기독교 우파는 이번 사건을 통해 이득을 취하지 못하고 큰 역풍을 맞았다. 남은 것은 정치권의 개입이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가져올 뿐이라는 교훈 뿐이다. 타임은 "이번 싸움에서 유일한 승자는 그만 좀 떠들라고 외쳤던 시민들"이라고 전했다.
◆ 숨을 죽인 정치권 = 톰 들레이 미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 등 보수 정치권은 이번 사건을 "의학적 테러" "현대의 십자가 사형" "법적인 살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휴가를 취소하고 텍사스 목장에서 워싱턴으로 올라오는 소동을 벌였고, 기독교 보수단체들은 전국적인 시위를 조직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지난해 대선 이후 계속되고 있는 미국 사회의 보수화 흐름을 더욱 가속화하고 다음 선거에서의 장기 집권 태세를 갖추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요즘 부시 대통령이나 들레이 의원은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이번 사건에 정치가 개입하는 데 대해 미국시민의 여론이 극도의 거부감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타임의 조사에 따르면 ‘시아보의 영양공급 튜브를 제거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59%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35%가 ‘반대’의사를 밝혔다. 또 미 의회나 대통령이 이 사안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선 각각 75%, 70%로 반대의사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특히 의회나 대통령의 개입은 이 사안을 ‘가치적인 판단(25%)’에서 보다는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65%)’이라고 보는 견해가 월등히 우세했다.
시아보 부모들의 청원을 기각한 플로리다 순회법원 판사를 가리켜 "젭 부시 주지사보다 더 용감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린 시대의 인물"이라고 옹호하던 진보 세력들도 같은 역풍을 맞을까 숨소리를 죽이고 있다.
◆ 다른 논쟁의 시작 = 보수와 진보주의자들의 논쟁은 낙태와 동성간 결혼에 대한 연방법원의 개입여부로 번져갈 태세다. 진보 진영은 보수주의자들이 낙태와 동성간 결혼과 같은 문제들을 주정부 권한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번 사건에서 연방법원의 재심을 요구하려 했던 것은 위선이라며 신랄히 비판하고 있다. 또 부시 대통령이 시아보의 생명 연장을 위한 법안에는 서명하면서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하지 않는 모순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반면 보수주의자들도 연방정부의 개입이 정당하다는 의견을 굽히지않고 있다.
그러나 두 진영 모두 극도로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은 2001년 취임 이후 가장 낮게 나타났다. USA투데이와 CNN, 갤럽이 21~23일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부시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45%에 그쳤다. 이는 지난 2월 말, 3월 초 실시된 여론조사보다 7%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갤럽은 부시 대통령의 시아보 사건 개입이 지지율 하락의 주된 원인이 됐을 것으로 분석했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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