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27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에 오르면서 "올해는 꽃이 좀 늦게 피죠"라고 말했다. 탄핵 기간인 지난해 4월 11일 기자들과 함께 북악산에 오르면서 자신의 답답한 심경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은 왔지만 봄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이라고 표현한 것을 의식한 언급이었다. 때문에 독도 문제 등을 둘러싼 일본과의 갈등,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둘러싼 정치권의 진통 등이 계속 되고 있는 상황을 빗대어 ‘꽃이 늦게 핀다’고 한 것 같다는 해석이 나왔다.
노 대통령은 산행 중 한일관계와 국토균형 발전 및 동북아 정세 등에 대해 주로 말했다. 노 대통령은 풍수지리를 화제로 꺼내 "지세는 불변이 아니고 시대 흐름하고 맞춰서 생산되는 것 같다"며 넌지시 국토균형 발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노 대통령은 "정도전은 자기 집터가 천자만손할 터라고 했는데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했다"면서 "그러나 500년 뒤 그 자리에 수송초등학교가 들어선 걸 보면 정도전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라면서 말을 흐렸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 터에 있는 ‘천하제일복지’란 글에 대해 "권력자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권력이니까 지금 지내는 곳이 천하제일이겠지만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궁궐의 암투, 음모가 들끓는 곳일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북악산 성벽 옆을 지나면서 "이것도 그렇지만 만리장성을 보면 참으로 험한 데 쌓여져 있다"면서 "어떻게 그리 어리석을 수 있는지, 이 돌을 쌓아올린 게 권력을 지키기 위함이지 백성을 지키려고 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전국토의 균형적 발전이란 비전 없이 수도권 집중 상황을 그대로 두면 수도권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게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조급하게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일시적으로 상황을 무마하고 넘어가는 응답이나 수사에 목표를 둬서는 안 된다"면서 일본 총리의 양보 발언을 얻어내는 데 주력해서 안 된다는 뜻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한국 국민은 지나치지 않아야 하고 일본 국민은 본질을 이해하도록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집권 3년차를 맞는 심경에 대해 "여전히 힘들다"며 "제일 어려운 것은 상생의 기반이 아직 우리 마음속에 제대로 준비돼 있지 않다는 점"이라고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쑥색 모자와 검정색 색안경을 낀 채 60여명의 기자들과 함께 2시간 30여분 동안 산행했다. 산행에는 김세옥 경호실장, 조기숙 홍보수석, 김만수 대변인, 윤태영 제1부속실장 등이 수행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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