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는 임원들에게 주식매수청구권(스톡옵션)을 지급하기로 결정하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전체 7명의 이사회 멤버 중 4명의 사외이사가 이를 반대해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회사 주가 상승률이 종합주가지수 상승률보다 밑돌 경우 당초 지급한 수량의 50%를 행사토록 한 조항에 대해 비판이 적지 않았다. 한 사외이사는 "경영 성적이 평균을 밑도는 데도 50%나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이는 불로소득과 다름없다"고 반대했고, 다른 사외이사는 "경영환경에 좌우되는 주가를 기준으로 성과를 측정해서는 안 된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올해로 도입 7년째를 맞은 사외이사 제도가 이사회 중심의 투명 경영을 정착시키는 중심 축이 되고 있다. 사외이사제가 그 동안 ‘통과의례’에 불과했던 이사회를 경영의 중심으로 정착시켰고 오너에 좌우되던 기업에 독립경영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반대건수 0.002%’에서 보듯, 지배주주에 의해 선임되는 ‘이사회 설계상의 한계’ 때문에 거수기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이사회가 찬성만 한다고요? 속 모르는 소리입니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은 거수기 논란만 나오면 할 말이 많다. LG전자 권오준 상무는 "미리 사외이사들의 의견을 반영해 수정을 하기 때문에 실제 이사회에서 사외이사들의 반대표는 적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사외이사들이 주주들의 소송을 우려해 주주이익을 해칠 만한 안건이 올라오면 일단 반대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불만도 있다.
작년 말 제일모직 사외이사들은 서울 서초동 부지 261평을 평당 6,000만원에 매각하는 안건에 대해 "땅값이 더 올라갈 가능성이 높은데 그 가격에 팔면 회사 이익에 어긋난다"며 반대했다.
삼성전자 한 관계자도 "안건의 무사 통과를 위해서는 사외이사에 대해 엄청난 설명과 설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웬만한 대기업들도 사외이사들의 자료 요구와 질문이 워낙 깐깐해 이사회 5일전부터 완벽한 ‘버전’의 자료를 보내고, 주요 안건에 대해서는 일일이 찾아가 설명한다. 실제 지난해 한국기업기배구조개선지원센터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사회 안건을 사외이사들과 사전 협의하는 과정에서 수정되거나 제외된 경험이 있는 사례가 대기업 22개사중 16개사(73%)에 달했다. 사외이사제 도입 이후 특혜 성격의 거래가 감소했다는 의견도 50개사 중 17개사(34%)로 조사됐다.
사외이사의 순기능이 아직 기대에 못 미친다는 비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최근 한국증권선물거래소가 시가총액 상위 10개사를 분석한 결과 사외이사의 의결 참여건수(2,536건) 가운데 반대는 0.002%(5건)에 불과했다.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아무리 사전에 조율한다고 하지만, 반대가 거의 전무하다는 것은 아직 거수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반증"이라고 비판했다. 지배주주가 사외이사 선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는 사외이사들이 지배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는 활동을 하는 게 인지상정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김 소장은 "올 주총에서도 전직 관료나 정치인들이 대기업 사외이사로 많이 선임됐다"며 "오너의 흠집을 막아주는 방패막이 정도 역할에 그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일정규모 이상 회사에 대해서는 소액주주들에게 유리한 집중투표제 도입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 사외이사 모습은/경영인 출신 44% 최다 평균연봉은 3,400만원
우리나라 사외이사 중 경영인 출신은 10명 중 4명 꼴로 대략 3,400만~3,700만원 상당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지난해 9월 사외이사 2,22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사외이사 중 경영인 출신이 977명(43.8%)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는 교수 490명(22.0%), 변호사 232명(10.4%), 회계·세무사 182명(8.2%) 순이었다.
전공은 역시 경상계열이 41.2%로 가장 많았고, 법정계열 18.6%, 이공계열 16.2%, 인문·사회계열 5.1%, 의약계열 1.8% 순이었다. 사외이사는 50대가 745명, 60대가 744명으로 조사돼 50~60대가 전체의 67%를 차지했다. 40대는 514명(23.1%), 70대 113명(5.1%), 30대 105명(4.7%)의 순이었다. 20대도 1명 있었다.
연봉에서 사외이사는 사내이사와 격차가 컸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사내이사에게 평균 58억원을 지급했지만, 사외이사는 그 1% 수준인 평균 5,700만원을 받았다. 올해에는 사내이사는 평균 89억원, 사외이사는 6,357만원으로 대폭 늘어났다. SK텔레콤의 사외이사 역시 4,600만원을 받아 연봉 5억6,000만원의 사내이사와 비교됐다. 지난해 8월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10대 기업 사외이사의 평균 연봉은 3,400만원이다. 20대 기업은 3,700만원이고, 30대 기업 평균은 3,600만원이다. 반면 10대 기업 사내이사의 평균연봉은 11억 1,000만원이었다.가장 많은 연봉을 주는 곳은 에쓰오일로 사외이사 1인 당 6,200만원을 지급했고 KTF가 6,000만원, 삼성전자 5,700만원, 삼성화재와 삼성전기가 각각 5,600만원, 엔씨소프트 5,400만원 순이었다. 2004년 현재 사외이사는 한 업체 당 1.83명 꼴이다.
고주희기자orwell@hk.co.kr
■ 오세종 SK㈜ 사외이사/ "회의·사업장 방문 등 1주일에 3,4일 출근"
SK㈜ 이사회는 국내 사외이사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단순히 회사측이 올린 안건을 동의해주는 수준에서 벗어나 한국 기업의 최대 화두가 된 지배구조개선과 투명경영 실천을 위해 사외 이사들이 경영진과 함께 혼신의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오세종(62·사진·법무법인 아태 고문) 사외이사는 "SK 사외이사는 다른 기업에 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 뿐 아니라 공부도 더 많이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외 이사들의 역할이 워낙 많다. 최태원 회장이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선언하면서 지난해 전체 이사 10명 가운데 7명이 사외 이사로 채워졌다.
의사 결정의 전문성 확보와 이사회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투명경영위원회 등 모두 6개의 전문위원회가 설치됐는데 모든 위원회의 위원장은 사외이사가 맡는다. 위원회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인사위원회를 제외한 위원회의 사외이사 구성비를 3분의 2 이상으로 정했다.
오 이사는 "지난해 이사회 18회, 위원회 31회, 사외이사 모임 8회, 사업장 방문 43회 등 총 127회에 걸친 각종 활동을 했으며 사외이사의 이사회 출석률이 96%에 달했다"며 "이러다 보니 일주일에 3,4일은 사무실로 출근해 현안도 챙기고 공부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원칙과 투명한 경영으로 회사의 건실한 발전과 기업 가치 증진에 이바지한다는 내용의 사외이사 윤리강력을 선포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이사회 백서까지 발간했다. 오 이사는 "이런 강행군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순이익이 1조6,000억원이 넘는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고, 각종 신용평가기관 등으로부터 SK가 기업지배구조개선과 투명경영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요즘 일반적으로 사외 이사들이 ‘거수기’ 역할만 한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서는 오해가 있다고 말했다. 오 이사는 "SK의 경우는 이사회에 상정하기 전에 전문위원회에서 안건을 토론하고 검토를 하기 때문에 부결될 사항을 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일반적으로 이사회에서 부결될 사항을 많이 올리는 회사는 경영에 문제가 많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이사회에서 의사결정의 기본적인 기준은 주주이익에 부합되고 회사 이익창출에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라며 "하지만 단기적인 주주 이익만을 좇거나 사외 이사들이 필요이상으로 경영에 간여할 경우 회사의 성장 잠재력을 해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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