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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성의 정치읽기/ YS·부시처럼 말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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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성의 정치읽기/ YS·부시처럼 말해서야…

입력
2005.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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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걱정이 하나 있는데, 클린턴과 장쩌민의 사이가 별로 안 좋다는 것이야. 주변 다른 나라들은 내 말을 잘 듣고 잘 지내는데, 미국과 중국은 그렇지 않아. 내가 잘 설득해 사이 좋게 지내게 하겠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한 중진의원에게 한 말이다. 김 전 대통령의 자부심이 얼마나 강한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세상의 중심에 자신을 놓고 복잡한 사안들을 단순화하는데 탁월했다. 김 전 대통령은 그럴 만 했다. 군부의 하나회를 단숨에 정리했고 공직자 재산공개, 금융실명제 등 굵직한 개혁과제들을 주저함 없이 밀어붙였다. 그 저변에는 문민정부의 정통성, 민주화투쟁의 경력이 깔려있었다.

그러나 여러 수단을 갖고 있는 국내 정치와는 달리 국제 정치에서는 ’YS 중심론’이 먹혀들지 않았다.

일본 에토 총무청장관의 망언이 있고 난 직후인 1995년 11월 14일 한중 정상회담. 김 전 대통령은 장쩌민 당시 주석과의 회담 후 "일본에서 계속 망언이 나오고 있다. 문민정부의 당당한 도덕성에 입각해 그런 버르장머리를 기어이 고치놓겠다" 고 기염을 토했다. 우리는 통쾌했지만 일본은 들끓었다. 일본 관방장관은 "절도있는 발언을 해달라" 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일본 언론들도 "버르장머리란 손윗사람이 젊은이의 나쁜 버릇을 꾸짖을 때 쓰는 속어" 라며 부정적인 보도를 했다. 한일 양국은 적정선에서 갈등을 봉합했지만 앙금은 깊게 남았다. 일본의 정계와 재계는 ’보복’에 암묵적인 동의를 했으며 97년 들어 한국 금융기관 등에 빌려준 돈의 만기가 돌아오자 통상적인 만기연장을 해주지 않고 회수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자금 회수가 외환위기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도 비슷하다. 독도 망언과 역사왜곡을 하는 일본을 향해 진검 승부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험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일본의 막강한 경제력을 염려, 문제삼지 말아야 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가 침묵한다면 나라의 존재가치가 없어질 것이다. 당연히 단호하게 일본의 망발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본질을 희석시키는 과도한 표현은 자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뿌리를 뽑겠다’는 등의 극단적인 용어는 김 전 대통령의 ‘버르장머리 발언’을 연상시킨다. 세계최강의 미국이라면 부시처럼 거칠게 행동하고 거칠게 말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이 아니다. 의지를 충분히 보여주면서도 품격있는 용어로 일본을 제어하는 것이 현명한 외교의 ABC다.

정치부 부장대우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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